셰프의 연애방정식-10

제10화. 낮에는 내 팀원, 밤에는 내 여자

by 지그프리드

○ 시놉시스: "칼 대신 서류를 든 셰프"

동생 연호가 입사 직전 거액의 사기를 당해 잠적하자, 연우는 동생의 빚을 갚고 그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 호텔 셰프 자리를 포기합니다.

남장을 하고 성운그룹 전략기획팀에 입사한 그녀.

하지만 하필 그녀의 상사인 태준은 매일 점심 메뉴의 염도까지 체크하는 까다로운 미식가입니다.

사고 친동생을 대신하기 위한 여주인공의 고군분투기입니다.


○ 등장인물

- 한연우(26세) : 촉망받던 천재 수 셰프(Sous Chef). 5성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기 직전이었으나, 사라진 남동생 연호의 사고를 수습하고 그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사직서를 던집니다. 칼을 잡던 손으로 이제는 볼펜을 잡고 성운그룹 신입사원으로 잠입합니다.

- 강태준(32세) : 성운그룹 본부장이자, 미식가들 사이에서 '악마의 혀'라 불리는 완벽주의자. 정체를 숨긴 재벌 3세로, 스트레스를 요리로 푸는 비밀스러운 취미가 있습니다.

- 한연오(26세) : 한연우의 쌍둥이 남동생, 어릴 때부터 사고를 치고 다닌 사고뭉치입니다.

- 강승준(32세) : 태준의 형. 태준이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제10화. 낮에는 내 팀원, 밤에는 내 여자


모든 진실이 밝혀진 선상 파티 다음 날. 연우는 평소처럼 압박붕대를 감고 짧은 가발을 쓴 채 '신입사원 한연호'로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본부장실의 공기는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본부장님, 커피 가져왔습니다."


연우가 조심스럽게 컵을 내려놓자, 서류를 보던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 드레스를 입었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지만, 태준의 눈에는 이제 짧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연우의 가느다란 목선과 발그레한 뺨만 보였다.


"문 잠가."


태준의 낮은 명령에 연우가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본부장님, 여기 회사예요! 밖에서 다 봐요."

"블라인드 내렸어. 빨리."


연우가 마지못해 문을 잠그자,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연우를 책상과 자신의 몸 사이에 가두고 속삭였다.


"한연호 씨라고 부르기 참 힘드네. 어제 그 한연우 씨는 어디 갔지?"


사내에서는 여전히 '철벽 본부장'과 '유능한 신입'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특히 오 대리와 박 대리의 눈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대문이다.


오후 3시, 탕비실. 연우가 평소처럼 커피를 타고 있을 때 태준이 불쑥 들어왔다.

연우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본부장님,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보고 싶어서 왔는데, 안 되나? 그리고 이거, 아침에 보니까 넥타이가 삐뚤어졌더라고."


태준은 자연스럽게 연우의 넥타이를 잡아 바로잡아주었다.

얼굴이 닿을 듯한 거리, 태준의 손가락이 연우의 턱끝을 살짝 스쳤습니다. 연우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던 그 순간, 복도에서 오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박 대리님! 이번 회식 장소 말이에요..."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연우는 태준을 냉장고 뒤편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본부장을 냉장고 구석에 박아 넣은 신입사원이라니! 연우는 태준의 입을 제 손으로 막고 숨을 죽였다.

좁은 공간, 태준의 뜨거운 숨결이 연우의 손바닥에 닿았다.

태준은 이 위기 상황이 즐거운 듯, 연우의 허리를 슬쩍 감싸 안으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거... 생각보다 짜릿한데? 비밀 연애라는 거."


회식 다음 날, 박 대리가 연우의 어깨를 툭 치며 친한 척을 했다.


"야, 연호야. 너 요즘 본부장님이랑 너무 붙어 다녀서 살 빠진 거 아냐? 어깨가 왜 이렇게 좁아졌어?"


박 대리가 연우의 등을 툭툭 치려 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태준이 박 대리의 손을 낚아챘다.


"박 대리, 신입사원 몸 건드리지 마. 성희롱으로 신고당하고 싶나?"

"아, 본부장님! 그냥 격려 차원에서..."

"격려는 말로 해. 한연호 씨는 내가 특별 관리 중이니까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태준의 과한 보호에 박 대리는 투덜대며 물러났고, 사무실에는 다시금 '본부장의 연인설'이 불타올랐다.

연우는 태준의 따가운 보호가 고마우면서도, 정체가 들통날까 봐 매 순간이 가시방석이었다.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 태준의 차 안에서야 연우는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태준은 운전대를 잡은 채 연우의 손을 꼭 쥐었다.


"언제까지 남동생 노릇 할 거야? 그냥 내가 확 공개해 버릴까? 내 여자라고."

"안 돼요! 연호 돌아올 때까지만 참아주세요. 본부장님도 곤란해지시잖아요."


태준은 연우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하며 웃었다.


"그래, 참아야지. 근데 연우야, 내일은 85도 커피 말고... 다른 게 마시고 싶은데."

"뭐가요?"

"퇴근하고 우리 집에서 네가 직접 해주는 저녁. 셰프님 실력 좀 제대로 보여달라고."


태준의 장난기 어린 제안에 연우는 얼굴을 붉혔다.

이제 두 사람의 무대는 차가운 사무실에서 뜨거운 주방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준의 펜트하우스 주방은 연우가 꿈꿔온 '드림 키친' 그 자체였다.

최고급 오븐과 날카롭게 관리된 나이프 세트. 연우는 오랜만에 남동생의 헐렁한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태준을 위해 오직 그만을 위한 정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와인 온도는 어때? 아, 셰프님 앞에서는 감히 입도 못 떼겠군."


태준은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 요리하는 연우의 뒷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봤다.

짧은 머리에 슈트 바지를 입고 있지만, 식재료를 다루는 연우의 손길은 그 어떤 춤보다 우아했다.

연우가 완성한 요리는 '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전복 파스타'. 태준은 한 입 먹자마자 탄성을 내뱉었다.


"연우야, 넌 정말... 이 재능을 숨기고 사무실에서 복사나 하고 있었다니. 내가 죄를 짓는 기분이네."


연우는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본부장님이 제 커피를 맛있게 드셔주실 때도 셰프였을 때만큼 행복했어요."


식사가 끝나고 태준이 잠시 중요한 전화를 받으러 테라스로 나간 사이, 연우는 태준에게 줄 디저트 과일을 깎으려다 칼갈이를 찾기 위해 그의 서재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놓인 붉은색 파일 하나가 연우의 시선을 강탈했다.


그 표지에는 정갈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상자: 한연호 - 위치 추적 및 과거 행적 조사 보고서]


연우의 손이 덜덜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넘기자, 동생 연호의 학교 성적표, 실종 당일의 CCTV 캡처본, 심지어 연호가 사기당했던 사채업자들의 리스트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맨 뒷장에는 태준의 친필로 보이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죠.


'한연호 확보 시 본인에게 즉시 보고할 것. 외부 유출 엄금.'


"거기서 뭐 해?"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태준이 굳은 얼굴로 서재 문 앞에 서 있었다.

연우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파일을 들어 보였다.


"본부장님... 이게 다 뭐예요? 왜 우리 연호를 뒷조사한 거죠? 설마... 제 동생이 사라진 게 본부장님이랑 관련 있는 거였나요?"

"연우야, 그건 오해야. 내가 설명할게."

"확보 시 즉시 보고? 외부 유출 엄금? 본부장님은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던 거네요. 제 동생 약점을 잡아서 저를 옆에 두려고 하신 거예요? 제가 여자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래서 더 몰아붙이신 건가요?"


연우의 눈에는 배신감이 가득했다.

사실 태준은 승준(형)이 연호의 사채 빚 문제를 빌미로 연우를 협박할까 봐, 자신이 먼저 빚을 해결하고 동생을 안전하게 찾아주기 위해 은밀히 사람을 푼 것이었다.

하지만 정황상 연우의 눈에는 태준이 동생을 '인질'로 잡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법....


"대답해 보세요! 우리 연호, 지금 어디 있어요? 본부장님이 숨긴 거죠?"

"한연우! 진정하고 내 말 들어. 널 지키기 위해서였어!"

"지키기 위해서라고요? 아니요, 본부장님은 저를 믿지 않으신 거예요. 그냥 통제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제가 커피나 타는 신입사원일 때처럼요!"


연우는 앞치마를 거칠게 벗어던지고 펜트하우스를 뛰쳐나갔다.

태준이 뒤쫓아갔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이미 닫힌 뒤였다.


집으로 돌아온 연우는 텅 빈 동생의 방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태준의 배려가 사실은 거대한 '감시'였다는 오해는 연우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반면, 펜트하우스에 홀로 남은 태준은 책상 위에 흩어진 연호의 서류들을 보며 머리를 싸맸다.


"조금만 더 확실해지면 말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터지면 안 되는 거였어."


태준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태준이 고용한 사설탐정의 연락이었다.


"본부장님, 한연호 씨 소재 파악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승준 전무님 쪽 사람들과 접촉한 흔적이 있습니다."


태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이제 로맨스는 가슴 아픈 오해를 넘어, 동생 연호를 둘러싼 형제의 진실 게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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