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면

by 도드리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이가 열이 날 경우, 우리는 일종의 눈치 싸움을 벌인다.


"오늘 오전 반차 쓸 수 있어?"

"어....글쎄. 넌?"

"난 어려울 것 같은데, 오빠도 알잖아."

(나는 오전에는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 한단 말이다.ㅠㅠ)

"나도 자리 비우기 어려운데...꼭 병원에 가야 할까?"


일어나서 다시 아이의 열을 재본다.


"아까 해열제 먹였어. 지금 별로 안 높네."

"....병원 가도 약이나 주지, 어차피 어린이집 보내야 하잖아."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 시간은 점점 가고 있다. 당장 출근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

아이는 눈을 떠서 뭐라고 종알댄다.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가 아픈데, 서로 일을 못 뺀다는 실랑이나 하고 있다니.


"내가 아프다고 병가를 낼게."


내가 용감하게 나서본다. 아이가 아픈 것은 병가나 연가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틈이 날 때마다 친절히 강조해서 들어온지라, 오전에 출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유란 거짓말로 내 병을 꾸며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족돌봄휴가라니, 그런 걸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부럽다.


남편은 내 한 마디에 희망찬 얼굴로 바뀐다.

그도 아픈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넣고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


아이가 아빠와 욕실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날이었다.

아이는 몹시 울어댔다. 남편은 미안함에 사색이 되어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토 안 하면 괜찮대."


어느새 내 품에서 울던 아이는 진정했고 우리는 휴대폰으로 '유아 뇌진탕' '아이가 머리를 부딪혔어요' 등을 검색하느라 바빴다. 우리는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 등을 공유하며 서로를 안심시켰다. 다행히 아이도 평소처럼 잘 놀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는 토했다.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먹은 것을 죄다 게워냈다고 했다. 아침에 등원시킬 때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토하거나 하면 연락 달라고 말씀드려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비타민 먹고 뛰다가 목에 걸려서 게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하필 전날 머리를 다쳤으니, 뇌진탕의 증상일 수도 있었다. 나는 일하다가 전화를 받고는 갈등에 휩싸였다.


'비타민이 걸렸다잖아. 토한 건 그것 때문이겠지.'

'뇌진탕이면 어쩌지?' '어쩔 것 없이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지.'

'선생님 말씀이 그 전까진 잘 먹고 잘 놀았댔어. 지금 나가면 눈치보이는데...'

'뇌진탕이면 지금 안 나간 거 평생 후회할 거야.'


일.

일.

하던 일을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족쇄같은 책임감. 책임감 없이 일을 놓을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돌발상황, 하지만 그 돌발상황은 상당히 잦고 나는 이미 근태로 직간접적인 여러 소리를 들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고민을 했다. 고민하는 내가 정말 나쁜 엄마인 것 같았지만, 현실적으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저어... 아이가 아파서요...."


한참 망설인 끝에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상사를 찾아갔다. 그의 얼굴에 또?라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얼굴이 벌개졌다.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회사를 나서서 차에 타는데 아까 아이가 토했다던 전화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흘렀다.

나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운전을 했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가 걱정되어서? 아이가 아픈데 엄마는 이렇게 작은-일터에서의 불이익, 눈치 따위나 생각해서 부끄러워서?

그러는 와중에 나는 아이가 뇌진탕이고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누가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남은 연차 일수를 열심히 계산하며 그것을 써도 되는 상황인지를 따져보았다.


이런 내가 모성도 없는 냉혈한처럼 느껴졌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를 응급실로 데려가서 수속하고, 대기하고, 사진 찍고, 의사를 만나고, 남편에게 연락해서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다행히도 아이의 부상은 별 일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나는 안도했다. 물먹은 솜처럼 피곤했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병원 로비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자 남편이 일을 마치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물론 그도 내내 마음 졸이며 내 연락을 기다렸고,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

아이는 그 후로도 종종 아팠다.


나는 굽신거리고 종종거리며, 때로는 눈물을 뿌리면서 일터를 비워가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아이 아빠는 (무척 안 좋은 마음으로) 평소처럼 근무를 했다.


이건 내 직장이 아이와 가깝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합의된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반대로 합의하는 부부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당장 어린이집에서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전화하지, 아빠에게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동네 소아과를 가보아도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왜 병원에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은 (극소수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엄마일까?


세상 아빠들은 전부 다 직장에서 멀리 사나?

세상 엄마들은 전부 다 나처럼 승진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나?


엄마는... 엄마는 일 따위보다는 아이를 최우선으로 해야 마땅하니까.


그러면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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