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의 망상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by 이이진

조현병은 발병 초기에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대폭 상승합니다. 그게 설사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조현병을 다룬 영화에서처럼 처음 만난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진 않아요. 아마도 조현병 기질이 있는 사람 자체가 타인에 대한 경계가 태생적으로 강한 면이 있는 거 같고 (기질적으로 외톨이거나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고) 자라면서 그게 증폭될만한 경험을 하면서 어느 날 스위치가 켜지 듯 경계심이 폭증하는 거 같아요. 특이한 사람들을 다루는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해괴한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조현병에 가까운데, 이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타인에 대한 터무니없는 적대감, 분노, 소통 거부 혹은 불가 등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뇌도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려 놓으면 안경이나 바퀴로 인식하듯이 어떤 개별적인 사건을 인과 혹은 연결로서 인식하려는 경향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사실 효율적이고요. 기억을 연구하는 많은 논문에서도 암기를 할 때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라고 말하는 그런 거예요.


그런데 조현병에 걸리면 이 연결 고리가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 타인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자 두 명이 드문 드문 지나가는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중증 조현병 상태가 되면 이 골목은 여자만 지나간다 이렇게 인지하는 비논리적인 연결 고리를 가지게 되는 거죠. 궁극에는 남자가 골목을 지나가도 남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장 여자다 이렇게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왜 남장까지 하면서 이 거리를 지나가는가? 국제 스파이인가? 내가 스파이의 본질을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니 이제 나를 죽이러 올 것이다. 저 여자가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죽여야 한다. 이렇게 맥락이 터무니없이 흐르는 겁니다. 조현병에 잠식당하면 아예 현실 감각을 잊어 살인 자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상실하면서 결국 그 남자를 기다렸다가 칼로 찌르게 되겠죠. 예전에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이런 맥락입니다. 처음 보는 여자인데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 남자를 남장 여자로 인식하는 예처럼, 인지 자체가 왜곡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론이 타인은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겁니다.


조현병 초중반에는 이 정도로 비논리적인 어떤 맥락이라도 존재하게 되는데, 조현병에 잠식당하면 현실 감각 자체가 사라지면서 결국 자신의 내면과 외부 자극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됩니다. 자기가 공포심을 느끼는 건데 누군가 공포심을 주입하고 있다 이렇게 왜곡해서 인지하게 되고, 이 정도가 되면 인간이 평시에 하기 힘든 행동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파탄으로 가져가죠. 그런데 뇌가 저렇게 망가지면 신체 활동도 자연히 둔화되고 먹고 자고 싸는 일상적인 활동 자체도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심각한 조현병 환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둔화된 움직임을 보이죠. 대화 자체가 진행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현병 환자가 일으킨 살인이 보도되곤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살인하거나 물리적으로 공격할 정도로 활동적인 조현병의 경우가 많지 않은 것도, 살인에 대한 인지 자체가 안 될 정도의 조현병 수준이면 이미 신체 기능이 상당 부분 저하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지가 왜곡되면서도 완력을 행사하는 신체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보면 다른 인격 (외부 존재?)에게 잠식당하고 오히려 더 활동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조현병이 외부 자극과 내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잠식당했을 때는 정상적인 소통 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은 조현병 영화라기보다는 다중 인격 혹은 빙의를 다룬다고 봐야 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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