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인 무릎 꿇고 사과 불필요> 논란에 대한 외국인들 의견 교환 사이트가 있어, 페이스북에 올린 것과 비슷한 의견을 올리니, 어떤 분이 댓글을 주시더군요. 일본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일본인들을 보면서, 그리고 몇 차례 이어진 한국과 일본 간의 담화문을 보면, 한국이 또다시 어떤 사과를 받을 필요가 있겠냐면서요.
제가 예전에 일본인이 만든 유튜브에서, 각종 자료들과 함께 자신들이 사과한 내역을 공개하고 이래도 여전히 자기들이 사과를 하지 않았냐며 한국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표현한 걸 보고, 그때 제 대답은 <사과라는 것은 사과를 받는 사람이 괜찮다고 했을 때 끝나는 게 가장 좋고, 그다음은 사과받은 사람의 확인에는 응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했었습니다. 내가 사과했으니까 더 이상 얘기하면 안 돼,라는 건 사과가 아니라 협박이죠.
당시 저는 일본이 여러 차례 사과와 같은 제스처를 취했었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유튜버에게 그와 같이 답변을 하고 말았지만, 이후에 여러 자료를 실제로 찾아보면서 일본이 말하는 사과라는 것이 정책적으로 반영할 필요 없는 하나의 의식적 치례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강제 징용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 피해자분들이 일본 법원에 소를 제기했었는데, 당시 일본 법원의 판단은 일본의 한국 지배가 합법적인 것이었고 국가가 동원하여 스스로 참여했으니 강제 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한국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큰 전제 하에 강제 징용 자체를 불성립시킨 것으로, 윤석열 대통령도 승계하겠다 언급했던 김대중 오부치 선언과도 양립할 수 없는 결과인 것이죠.
오부치 총리대신은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선언문을 발표하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통렬한 사과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본 사법부는 식민 지배를 합법적인 지배로, 강제 징용을 자발적인 노동으로 규정하면서, 합의 따로 법률 따로 이행하는 모순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정부와 사법부가 어떤 판결에 대해 일견 괘를 달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오부치 선언이라는 것이 일본인들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승계되는 해괴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을 보면, 미안했다고 하다가, 미안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하다가, 미안한 부분은 있는 것 같다고 하다가, 이거는 사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다가, 사죄는 있었다고 하다가, 그건 사죄가 아니라고 했다가, 역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하다가, 사죄했는데 왜 자꾸 사죄하냐고 했다가, 사죄는 했지만 합법적이라고 했다가, 사죄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가, 그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가, 누가 사죄했다고 하다가, 그건 의식이라고 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끊임없는 변곡춤을 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의 일관되고 지속된 입장이라는 것은 찾을 수가 없는 지경이죠.
한국이 일본과 관계를 회복했다가 다시 얼어붙었다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사과와 비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과보다는 비난이 더 강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이 역사에 대해 통일된 입장을 가진다는 것은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양 국민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양 국이 소통을 하여야 하는 것이고 역사에 대해 통렬히 직시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일본인들도 지키지 않는 오부치 선언을 들고 뭘 하려는 것일까요?
옮겨온 기사에서도 보면 현 일본 총리는 강제 징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필시 일본 사법부의 판단인 일본의 합리적 지배를 전제에 두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구체화된 게 없는 역사의 한 침략을 이렇게 혼자 오부치 선언에 기대어 무릎 꿇으면 해결할 일이라는 어린이 놀이쯤으로 치부하듯 맞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저는 너무너무 두렵습니다. 역사 인식을 넘어 현실 인식 자체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덧붙여서, 일본은 역사 이래로 식민 지배를 공식화한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서구권이나 유럽에서도 식민 지배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일본은 경제 1, 2 위를 다투는 선진국입니다. 문화에 있어서도 일견 유럽들을 앞설 때도 있죠. 그런데 이 문제로만 돌아오면 철저히 유럽 중심주의로 변질됩니다.
유럽은 스스로도 국가 간 전쟁에 휘말렸고 이어서 철저히 다른 인종들을 착취했습니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전쟁도 했지만, 서로 불교니 뭐니 문물을 주고받기도 했던 역사적인 나라 한국을 식민지화했습니다. 다름 아닌 몇 천 년을 곁에서 보아온 나라를 짓밟은 거죠. 조선이 어떠했다, 서유럽의 식민지화가 어떻다, 이 주제로까지 나가는 것은 여기서는 멈추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식민지배의 배경이 되는 전쟁 자체의 속성에 대해서도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부 제외하겠습니다.
일본이 어떤 결정을 할 때 앞서 나가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굳이 이 문제에 있어서 유럽이나 서구 권의 영향을 받을 필요 없다고 봅니다. 역사에서 가장 먼저 식민 지배를 공식화하고 역사를 청산하여 서구와 유럽을 변화시킨 국가로서 일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그럴 위치가 이미 충분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