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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국민의 몫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총리 화담 결과

by 이이진

저는 일단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제가 지지했던 지지하지 않았던, 선출한 국민들의 의사에 따라 대통령의 정책 전반에 대해서 딱히 비판하지 않아 왔습니다. 대통령들과 소송을 하며 위법 사항에 저항한 것도 저 나름대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에 머물고자 했을 뿐, 현실 정치에 의견을 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정책 방향은 저로서는 납득이 너무 어려워 의견을 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공약의 실천이라며 주장하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명백히 일본과의 문제를 과거에 침잠하여 매몰하지 않되 과거사, 주권 문제에는 당당한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당당한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게 <100년 전 일로 일본 무릎 꿇어야 한다고 생각 안 해>와 동일한 입장일 수 없다는 건 국민 일반이 인지가 되는 것이죠. 국가 검찰권의 수장으로서 각종 법률행위 최고 지위에 있었던 자가 이런 인식 자체가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자체 공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이 낮은 등의 지지 기반이 위태롭고, 여소야대의 정치 상황에서 뜻대로 정치 능력을 펼치지 못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급박하게라도 일본이나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여지지 계층을 몰입해, 다음 선거에서 이겨야,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허왕된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공약조차 지키지 못하는 난제에 오히려 몰입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 중 누구도 단지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이 무릎 꿇지 않아서 관계를 악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이 과거사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구체적인 재발 방지에 대하여, 그로 인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조차 사법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데 따라,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인식 차이는 단지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피지배국가 전반이 소유한 공통된 인식으로서, 이에 대해 일국의 대통령이 인지를 못 한다는 자체가 한국인으로서 수치스럽습니다. 일본은 한국과의 문제부터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올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과도 같은 문제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고, 이는 국제적인 고립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지배 국가보다 피지배국가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방향 자체가 윤석열 대통령은 인지가 안 될 정도이니,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된 건지까지도 회의가 듭니다.


유럽과 서구권이 식민지배 국가와 새 장을 열었기 때문에 한국도 일본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데, 유럽과 서구권이 식민지배 국가로부터 난민을 받아들이고 내전에 개입하고 각종 제도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과 서구권이 피지배국가와 다른 역사 인식을 하는 것이 용납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방편으로는 뿌리 깊은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서구권이라서, 해당 발언은 심지어 아시아 피지배국가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피지배국가들로 하여금 식민지배 역사를 허왕된 복수극으로 치부하게 하는 모욕까지 저지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의 공통된 역사 인식 형성과 재발 방지를 위해 희생해 온 수많은 자국민들을 졸지에 옹졸한 역사 매몰자 혹은 복수극의 주인공으로 규정하는 악태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약마저 지키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까지도 보여주고 있는데, 집권 중인 대통령의 입을 막을 방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서,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 고심 좀 하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글로서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다른 당에 입당하거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일 텐데,


아직 그중 하나도 해본 게 없으니, 그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대통령의 입을 막을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로군요. 여하튼 저는 윤석열 대통령과 완전 다른 입장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은 이미 한국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여 이번 정권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게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관계를 개선해도 정권이 바뀌면 다시 원상회복되는 건 한국의 오랜 프로세스이니까요. 한국이 소위 말해 일본에 대해 온갖 센 척을 하다가 결국 일본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굳이 축소할 이유도 없죠. 한국의 모순을 보여주잖아요.


일본이 관계 개선에 서두를 이유를 주지 않은 자체가 그 누구도 아닌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에게 나왔고, 이는 국민의 수치로 이어진다는 걸, 단지 외교적 참사에 머무르는 정도를 떠나 역사적 참패에 도달할 지경이라는 걸, 윤석열 대통령이 자각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끄럽네요, 이런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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