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으나 살아있으나 신체가 똑같습니다.

종교의 근원, 죽음에 대한 고민

by 이이진

죽음이 두려움을 넘어 미지의 어떤 것으로 인지됐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금도 연구 중이긴 하나, 죽음 이후에 신체가 그대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살아있건 죽어있건 <사실상> 똑같은 신체로 존재하며, 다만 살아있을 때는 신체가 그대로 유지되지만 죽음 이후에는 신체가 빠른 속도로 분해된다는 차이점이 있는 거죠.


이집트에서 왕이 죽었을 때 어떻게든 신체를 사라지지 않도록 극한의 연구를 했던 것, 성경에서 예수가 죽은 줄 알았는데 무덤에서 신체가 사라졌던 것 (따라서 예수는 신체 그대로 천국으로 갔기 때문에 시체가 남아 있지 않게 되며, 이게 일반 사람의 죽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즉 영이 아닌 육의 천국 입성이고, 사실상 기독교 교리를 바탕에 둔 신학들의 핵심입니다.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기독교적 교리에서는 이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죽음 이후에도 남는 신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죽음에 이를 때는 신체 외부는 같을지 몰라도 신체 내부에서는 장기의 (여러) 부전 혹은 기능적 손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돌이킬 수 없는 장기의 부전이 일어나는지는 아마 지금의 의학도 밝히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장기 부전에 의한 죽음에 가까웠다고 판단이 돼도 각종 전기적 자극, 약물 투여 등으로 살아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았음에도 전기적 자극이나 약물에 반응하지 않은 채 결국 장기는 기능을 손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지금은 여러 검사를 통해 죽음을 가능한 현실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어 의사가 실질적으로 사망 선고 (죽음 고지)를 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당시 죽음은 <사실상> 같은 신체에서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끊어짐이었고, 이집트 예를 또 들겠지만, 추상적으로만 인지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온갖 연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에서도 진시황이 죽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했는데, 그 많은 약제들을 지금으로 말하면 온갖 실험을 해서 각종 약물을 만들었을 것으로, 죽음을 실제적으로 알아보려는 움직임은 아주 오랜 인류에서부터 개발이 됐다고 봐야겠죠.


참고로 일단 이집트와 중국, 성경은 물론 지금의 지리학적 이집트와 중국 혹은 이스라엘을 구심점으로 하고 있겠으나, 여기서 언급하는 이집트와 중국은, 접근 방식의 공통된 인식을 같이 하는 경계선이 불분명한 인구 집단을 의미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죽음이 (유기적) 신체의 영속성에 귀속된다고 보았을 이집트와 죽음 이후에도 신체가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봤던 기독교, 현실에서 극복 가능한 것으로 봤던 중국, 그 밖에 여러 기타 관점들의 괘(?)를 같이 하는 인구 집단적 움직임, 이런 맥락도 있는 거죠. 이 부분은 논란이 있을 거 같긴 하나, 여하튼 참고로 말씀드려 봅니다. 성경에서 예수 시체가 없어진 대목을 이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신기한 일로 기술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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