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글이 될 거 같은데요, 2030 세계 엑스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개최지 후보로 부산과 리야드가 언급되자 누가 봐도 리야드가 될 것이 너무나 명백해 보였습니다. 이슬람 국가들은 기존의 폐쇄적인 행보에서 벗어나 SNS까지 하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 결과로 여러 국제 대회가 이슬람 국가들에서 연이어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죠. 각종 세계 대회에 대해 서구 글로벌리즘이라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다소 있는 것이 분명한 이슬람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면 한국도 이런 추세 정도는 인지를 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정치 방향을 움직이고 있다면 한국도 이에 맞춰 움직였어야 하는 거죠.
사우디 왕자가 세계를 돌면서 외교를 하는 과정 중에 한국까지 왔고, 한국도 이에 호응하여 각종 사업의 이권을 받아냈다면 더군다나 이런 추세를 인지를 했어야 합니다. 한국도 오일 머니라며 비판하는 그 머니 앞에서 서로 이익 다툼을 했었으니까요. 누굴 비난할 것도 없죠, 한국도 이럴 정도인데. 내가 하면 내 식구, 내 새끼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라 정당하고, 남이 하면 비굴하다는 처세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어떻든 한국이 후보지로 신청을 했다면 국가 차원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고, 따라서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이렇다는 것은 아쉬운 겁니다만, 문제는 한국이 각종 홍보 작업을 하며 온갖 인맥을 동원하면서도 100여 개 국에 이르는 나라들의 의사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소통이 안 됐던 거죠.
그렇다면 한국을 속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앞에서는 한국을 지지한다고 하고 뒤에서 돌연 사우디를 지지했던 것인가, 그렇게까지 본인들의 의사를 꽁꽁 숨겨뒀던 것인가, 생각하기에는 나라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굳이 한국을 속일 어떤 정치적인 관계가 있는 국가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요. 따라서 이는 누가 봐도 민관을 다 동원한 한국 정부의 소통 실패라고 봐야 하고 이게 바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죠. 대통령까지 동원돼 국가를 대표하는 모든 민관, 모든 정보 체계를 다 동원한 결과가 100개국의 의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사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돈은 가장 먼저 언급되는 문제이지만 본질적인 문제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수출하지 않아 한국이 어려워진 배경에는 미국과의 패권 다툼이 있었고 사드 문제가 있었고, 일본과도 배상 문제로 무역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즉 무역 분쟁이나 각종 이권 다툼 혹은 결정의 배경에 돈 문제 하나만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거죠.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번 유치 실패의 원인도 사우디의 오일 머니라면서 또다시 돈타령을 했고, 부끄러움은 누구 몫도 아닌 게 됐습니다. 왜 사우디가 됐을까 이상으로 한국은 왜 100여 개국의 의사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인 거죠. 제가 보기엔 심각하고 염려스러운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무원이나 기업 서비스 센터와 분쟁이 생겨 제가 사과를 받으면, 제가 간혹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제가 100원을 요구할지 1,000원을 요구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건 절대 안 된다고 거부를 하죠. 사과가 진심이라면 상대방이 얼마를 요구하는지 정도는 들어봐야 할 텐데, 사과는 입이 닳도록 해도 돈은 절대 줄 수 없다는 그 강경한 자세를 마주할 때마다, 사과에는 관대하면서 돈에 대해 지독하게 강경한 그 불쌍함이 저로 하여금 한숨이 나오게 합니다.
이번만큼은 한국이 그 지긋지긋한 <돈, 돈, 돈, 돈>이라는 추접에서 벗어나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근본적인 관점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늘 나오는 말이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일어날 일을 안 일어나게 한 대가는 비참함뿐이죠. 이걸 한국이 빨리 깨달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