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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긍정하는 마음은 주도권을 흐리게 합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의지

by 이이진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있는 여성이 이상한 짓을 하더군요. 술에 취했는지 냄새도 불쾌했고 계속 흔들거리면서 꼭 발을 밟을 것처럼 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자연스럽게 다른 자리로 옮기게 되었고요. 그렇게 옮기고 나자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면서 제가 바로 그 자리에 앉을 수가 있게 되었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면, 지하철의 그 여성이 술에 취해 이상한 행동을 해줌으로 인하여 제가 빨리 자리에 앉아 가는 좋은 일이 생긴 거겠죠. 이런 일은 종종 있습니다. 갑자기 누가 화장실에 꼭 따라 들어온 것처럼 굴더니 뭘 알려준다거나 이런 식으로요. 왜 따라 들어오냐 속으로 괜히 오해했다가 오히려 감사하다, 이렇게도 생각하죠.


그런데 저는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불편해도 좋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는 동선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서서 가도 괜찮았다면, 결국 저는 그 자리에 있고자 하는 제 선택권이나 의사가 침해당한 채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이거는 어떤 사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 부정적으로 바라보느냐의 입장 차이가 아니라, 내 삶에 내가 주도권을 갖느냐 안 갖느냐의 문제로 옵니다. 화장실에 따라 들어와 알려주는 경우에도 제가 스스로 발견할 기회를 박탈하는 걸 수 있고요. 이런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많다 보니까, 이제는 그렇게 행동하고 제가 자기를 어떻게 보나, 유심히 보는 사람들로도 보여서 참 난감합니다. 지하철이고 버스고 어디고 가면 이상한 행동하고 지긋이 쳐다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어제도 백종원 빵집엘 갔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한 여성이 지나치게 사적인 대화를 쓸데없이 길게 하더군요. 뭐 급한 일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 정도로 급한 전화도 아닌데 굳이 사적인 대화를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목소리도 아닌 데다가, 적당히 하지 계속 전화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쳐다보게 됐죠. 그랬던 그 여성이 그때서야 부랴부랴 뭔가 인식을 한 것처럼 전화를 끊더군요. 자기가 쓸데없는 전화를 불필요하게 길게 하니까 앞사람이 쳐다보는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불쾌하고 이상한 인풋을 해놓고 자기가 원하는 정상적인 아웃풋이 나오길 바라는 걸 망상이나 욕심이라고 다들 합니다만.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면 일단 이렇게 벌어진 사건을 긍정적으로 봐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사건이 어떻게 벌어진 건지, 왜 벌어진 건지 그걸 보고 싶어 하는 건데, 계속 사건을 긍정적으로 봐라 하는 건 답답한 거죠. 저는 사실 긍정도 부정도 잘하지 않는 편이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데요. 물론 도움이 필요 없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문제는 도움의 형식과 형태죠. 즉 <내가 제공하는 방식이 불쾌하더라도 너는 도움을 받아서 고마워해라>는 곤란한 겁니다. 어린애나 부모가 주는 밥상을 그대로 받아먹는 거지 어른이 되면 양말 색깔 하나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는 거거든요. 성인인데 기초적인 결정 하나도 못 하게 하면서 무조건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보라고 하는 걸,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이라고 하고요.


보면, 나쁜 일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음에도 제가 때로 나쁜 방향을 보는 경향이 있어 이 부분을 다소 고쳐야 할 필요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제가 이런 습성을 바꾸게 된 계기는 뭔가 억지로 나쁜 일을 억지로 좋게 만들려고 압제하는 과정에서보다는, 있는 그 자체로 무언가가 보일 때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리얼리티 쇼에서도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스타를 보려고 하지, 일부러 어떤 상황을 만들어서 그걸 억지로 극복하는 조작이었다고 하면 누가 그걸 보려고 하겠습니까? 어떻든 일부러 나쁜 상황을 만들어서 억지로 좋게 한다는 식으로 꿰맞추는 건가, 이런 생각까지 들어서 지금도 정신과만 다니고 기분만 찝찝합니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보라는 건 결정권을 포기하라는 거죠. 자기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보는 방식을 박탈하는 겁니다. 그나마 요즘엔 설명하기 참 난감한 새로운 재미가 생겨서, (영어로는 observer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가 보다 넘기려고는 하는데, 순간 짜증이 나는 건 참 참기가 힘드네요. 그나저나 지하철이고 어디고 간에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넘쳐 나는 겁니까? 안 그래도 미친 여자 하나가 정초부터 또 고소 남발해서 조서 쓰러 가야 되고 골치 아파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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