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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Mar 25. 2024

고함지르고 분노하고 현수막으로 저항해야 말을 듣는 관행

좋게 부드럽게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서 좋은 결과가 오는 경험을 쌓아야 


현수막 얘기가 나와서 또 올립니다. 이 현수막은 강남구 개포로에 설치된 것으로 실제로 보면 사람 키 높이 이상으로 높아서 맞은편 도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수막을 설치한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하는 것일 텐데, 뭐가 어떻게 억울하다는 건지 사연을 듣고자 봐도 연락할 길도 없고, 이 큰 현수막을 설치하면서 설치 시간이나 제작 업체 등 어떤 안전 보호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수막을 설치했으니 사연을 알려 달라는 것으로 봐서 이렇게 옮겨오겠다고 하는 말을 해줄래도 무슨 연락처가 있어야 말이죠. 


법원 앞에도 상당하나 해당 현수막들은 도로를 지나거나 횡단보도 앞에 있다 보니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이 현수막으로 올리고요.


앞선 강남구청 현수막에서, 필요하다면, 제가 강남구청장이 현수막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나 고발 조치도 가능하겠으나, 이렇게 억울하다는 국민이 법을 위반하는 경우에 이를 시정해 달라 요구하기가 참 난감합니다. 당연히 강남구청장이 법을 더 준수해야 할 의무가 충족된다고 보더라도, 그렇다고 일반 국민이 다른 억울한 국민이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현수막을 설치한 것에 대해 그 의사를 확인할 수조차 없다는 건 저로서는 좀 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경찰이 제 이의 신청서와 증거를 누락한 채 검찰에 사건을 송부하거나 그걸 또 확인할 틈도 없이 불기소 처분하는 검사 등 국가가 악독하게 구는 것에 대해 포스팅을 했었는데요. 그 일 말고도 열두 달 욕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억울한 일이 천지이나 저는 정당하게 의견을 제기하면 수용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악에 받친 현수막 제작까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소장이나 답변서에도 욕설이나 폄훼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민원을 넣을 때 하는 말이, 좋게 완곡하게 민원으로 일을 해결하도록 해야지, 꼭 현수막 세우고 고함지르고 울고 불고 고통 속에 절규하도록 해야 들어주는 시늉을 하면, 조용하고 완곡하게 해결하려는 사람도 결국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저는 예전에 옷 가게를 할 때도 조용히 입어보고 바로 사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할인을 해줬지만, 터무니없이 값을 후려치면서 생떼 부리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옷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조용히 옷을 사는 사람에게는 제 값을 받고, 깎아 달라 난리 치는 사람에게 값을 깎아주니 서로 피곤해지는 거죠. 조용하게 제 값 주고 옷을 사가는 고객이 아니라 짜증 부리고 완력을 과시해야 이익을 보는 구조가 저는 예전부터 싫었습니다. 


좋고, 원만하고,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편안하게, 갈등 상황에서 행동했을 때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긍정적인 경험이 한국에 너무 없지 싶습니다. 현수막들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운 사연도 너무 많고, 그걸로 인해서 불편해지는 시민들도 안타깝고, 왜 꼭 그 지점까지 가도록 하는지 국가도 참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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