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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식사하길 싫어하는 사람과의 결혼

by 이이진


남과 식사하는 걸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이혼하고자 하는 사람의 영상을 보면서 저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저도 이런 비슷한 증세가 있다 없다 하는데 그 계기가 초등학교 시절 간염 보균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당시에는 보건소에서 진단이나 관리도 하고 교육 비슷한 것도 하고 그러면서 온갖 설도 난무하던 터라, 혹시 제가 남한테 간염을 옮길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거부감에서 남과 식사하는 걸 두려워하는 경향이 생겼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성격이 활발해져서 어울리는 걸 즐겼는데도, 같이 도시락을 먹을 때 다른 사람 반찬을 먹는 것에 불편함이 있었고, 혹시 어디서 식사를 하면 저는 배가 안 고프다는 등의 핑계로 같이 먹지 않아서 굉장히 심하게 마른 체형이었습니다. 이게 대학과 대학원, 사회생활까지도 이어져서 아마 저를 아는 분들 중에 저와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은 극히 드물 정도로 남과 식사하는 것에 여전히 불편감은 있습니다. 사연자처럼 남 식사하는 모습이 막 항상 더럽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생긴 불편감은 문득 튀어나오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소고기나 회 같은 날 것, 술, 식초가 강한 음식, 향이 강한 음식 등 가리는 게 제법 있다 보니,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저를 제치고 자기 먹을 거를 주문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식당 가면 자연스럽게 저를 위주로 메뉴가 결정되고, 한국은 특성상 다른 식성을 갖는 것에 호의적이지가 않아, 알레르기 아니면 일단 먹어봐라 우기는 사람들, 이렇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죽으면 니 손해다, 이런 분들이 워낙에 많아서 이런 갈등을 유발하느니 차라리 안 먹겠다 이렇게 바뀐 면도 있습니다.


제가 남과 식사를 잘하지 않으니 종종 오해를 받아서 이거를 깨 본다고 한 때는 또 여러 분들한테 얻어먹어도 보고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주변분들한테 같이 식사 안 하겠다고 한 걸 보면 (누가 같이 먹어준다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남이나 타인과의 식사가 유쾌한 건 아닌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가 저는 잘 못 먹는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걸 즐거워하는 괴이한 습관이 있는 걸 알게 되면서, 같이 직접적으로 나눠 먹는 건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그렇게 먹는 걸 보는 걸 통해서 뇌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걸 알게 돼, 먹방의 최대 수혜자가 됐습니다. 이 먹방도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 위주 이런 식이긴 합니다만.


아마 상담자 부인도 저처럼 상당히 충격적인(?) 그리고 말 못 하는 어려움이 해당 기피증을 발생시켰을 텐데, 결혼한 상대한테까지 근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건 상담자 그러니까 배우자에 대한 예의는 아닌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남과의 식사 자리를 불편해하는 것에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나 책임을 와해하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지인들끼리 모여서 소고기 파티하려고 하면 당연히 저는 제외되는 것처럼요. 즉 상담자 부인은 일정 부분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시댁이나 배우자 친구 모임 등) 본인이 남과 식사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며 이유 또한 밝히지 않는 것은 이혼 사유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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