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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un 06. 2024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됐을 때는 상당히 다른 세상이죠

부모가 자기 아이가 이런 인간으로 기억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해야 

https://youtu.be/eIJo067 OBWs? si=qbebzbh0 KOgzGQRV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 중에 학창 시절이 원만하지 않은 경우는 제법 있습니다. 에디슨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자 엄마가 직접 가르쳤고 아인슈타인이나 여러 위인들이 학창 시절 문제아라는 낙인, 실패자라는 오명을 쓰곤 했죠. 화가 중에 장 뒤비페는 딱히 미술을 배우지 않고도 대가 반열에 올랐으며, 따라서 유럽이나 서구에서는 예전부터 여러 일화로 인하여, 대표적으로 어린이를 학교라는 구조에 맞추는 것에 대한 회의가 제법 있는 편입니다. 존 듀이라는 학자는 이를 실제로 체계화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생기는 지점은 부모의 반응입니다. 에디슨의 모친은 아들이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자 학교를 비판하는 동시에 <자기가 직접 가르쳤으며>, 모차르트의 경우에도 <부친이 직접 음악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는 5세에 이미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즉 천재나 위인처럼 특이한 아동들이 학교 생활에 부적응한 면이 있거나 학교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이 경우 부모가 학교를 비판할 때는 스스로 가르치거나 심지어 학교를 만든 경우도 있고, 이들은 학교 생활에 부적응했을 뿐 일부 영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습득 능력이 있었습니다. 즉 아동이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는 것에 대해서 부모 자체가 주체적인 입장이 있더라는 거죠. 


자기가 부모로서 자기 아이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어떤 그런 지점에서 아동에게 부모가 신뢰를 줄 때, 아이가 비록 학교에 부적응하더라도 결국 자기가 가진 능력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는 것은 봤어도 무턱대고 학교가 아이에게 맞춰주기를 바라는 경우에, 아이가 소위 말해 <숨겨진> 능력을 발휘한 예는 제가 찾기로는 없습니다. 


부모 스스로가 왜 자기의 <특별한 아이>가 <일반 보통 학교>에 가야 하는지를 정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가 학교에서 받는 처우에 관하여 불만을 갖다 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학교라는 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행태로 이어지는 거죠. 이런 경우 가장 좋은 건 부모가 자기 아이를 직접 양육하며 관찰하고 외부에서 발생할 수 있을 각종 잘못을 차단하는 외에는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모차르트의 경우에도 업적에서는 상당히 어마무시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문제가 많은 경우가 태반이었고, 여러 위인들 중 소모로 인하여 단명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를 통해 보면 어린 시절 학교나 사회생활에서의 부적응 자체가 자라면서 해소된다기보다는 업적이 워낙 위대하니까 일상에서의 문제는 딱히 대수롭지 않다고 본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따라서 학교 생활에서의 부적응을 시정하지 못하면 성인이 돼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나마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 에디슨처럼 업적마저 없다면 스스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모들이 인지를 하면, 혹시 <내 아이가 특별해서 이런 문제를 겪는 거 아닐까>, <무엇보다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야 하지 않나>, 위안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아이가 특별하고 개성이 있어서 학교 생활에 부적응할 수는 있는데, 그럴 경우 일반 아동과 뭔가 다른 점이 있다고 다시 말씀드립니다. 에디슨도 왜 <1+1=2> 나면서 이를 납득하지 못해 부적응한 것처럼, 뭔가 다른 아동의 부적응에는 아동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거죠. 무턱대고 반항하는 게 아니라. 


덧붙여서 과거에나 업적이 위대하면 인성이나 실제 삶이 문제여도 넘어갔던 것이고 (이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느냐, 생략하고) 지금은 업적이 위대해도 인성이 문제면 온갖 소송과 각종 루머에 시달리는 등 인생이 고달픕니다. 오해라고 하던 것들이 일시에 사실로 밝혀지거나, 어린 시절 방황했던 내용, 각종 처분 내역 등이 성공 이후 공개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과연 지금 내 아이가 저렇게 교감을 얼굴을 쌍욕 하며 때린 것이 어떤 업적으로 가려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무슨 변호사도 정치인이 되려다가 아들이 학폭을 했는데 서울대를 가니까 반대 여론이 일어났었고, 밀양 사건 가해자들도 심지어 20년이 지나도 신상이 공개가 돼, 직장 다 잘리고 악인으로 박제되는 시대를 살면서, 자기 아이의 지금 모습이 20년 후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부모라면 우둔한 거라고 좀 심하게 표현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방송에서 아동의 이런 모습에 대해 부모가 고민하는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아이돌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양육하는 방식인데 이거는 또 성인으로 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기도 해서,


여하튼, 교육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만, 제가 자라던 학창 시절에는 폭력과 멸시가 난무하기도 했었으나, 만약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것도 당연히 불법이고 학생이 친구를 때리는 것도 확실한 불법이라는 확언이 있었다면 저는 그게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절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가르침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이죠.


물론 위 경우 유명해지거나 성공한 삶을 사는 등 타인의 주목을 끌면서 과거가 소환된 경우가 있어,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살면 과거 행적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밀양 사건에서 보면 가해자로서 성장해 일반 서민으로 식당하고 경찰관으로 복무하며 살아도 과거 행적이 공개되기도 하므로, 반드시 유명세가 모든 걸 끌어내는 것은 아닌 거 같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사건 자체가 공분을 살 때 이슈화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입니다. 조두순도 출소하고 조용히 살았으나 사건 자체가 너무 끔찍하다 보니 공론화가 됐고요. 이 사건을 보면, 그 정도로 공분을 살만한 인상을 남기냐, 봤을 때, 부모가 스스로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덧붙여서 과거에 잘못을 했더라도 반성하면서 좋은 일 하고 다시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가 있는데, 여기서의 관건은 <철저한 반성>과 <다시 하지 않는다> 정도가 될 테고, 이게 또 쉽지가 않아서 이번에 김호중 사건도 터졌죠. 근데 살아보니까 진짜 반성하면 다신 그 근처도 가기가 싫긴 하더라고요, 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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