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진 Aug 01. 2024

괴롭다면서 육아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분에게

그렇다면 그 괴로움을 아이에게 보이지 않아야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https://youtu.be/NFP5 ScYMGbw? si=-WReO3 teATMniKMD


자녀가 없는 상황에서 사실 이런 질문에 제가 감히 댓글을 달아도 될까 싶은데, 어차피 아이가 없는 스님에게 의견을 물었다는 건 상담자 본인이 아이가 있는가 여부보다 제삼자에게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듣고자 함이라고 생각하고 댓글을 답니다. 


상담자는 상담을 시작할 당시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따라서 지금은 다시 스님에게 그렇다면 이제는 직장을 다시 다니는 게 낫겠는지 묻고자 하는 의사로서 왔다고 보이고, 저는 여기서도 의문인 것이, 아무리 종교적 신실함이 크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직장을 다니거나 하는 문제를 스님의 말씀으로서 결정했다 판단한 부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님의 의견을 참고로 하여 직장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 하에> 스스로 직장을 그만둔 거죠.


만약 상담자 님이 처음 질문을 할 당시부터 이렇게 어떤 결정에 대한 스스로의 주체성을 정확히 인지했더라면 저는 그 이상 진행되는 상담 내용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나, 역시 이어지는 상담자님의 토로는 <육아로 괴로울 때도>, <저는 너무도 어리석어>로 이어졌으며, 본인이 육아가 괴롭고 스스로 어리석어 누굴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면서도 계속 자녀 교육을 스스로 진행하려는 근거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심지어 즐거운 일도 계속하자면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법인데, 스스로 괴롭다고 인지하면서 왜 육아를 하고자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상담자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옆에 있어주고 싶습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가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갖도록 엄마가 알려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즉 상담자는 이제야 본인이 욕망하는 게 뭔지를 토로하고 있는 거죠. <육아가 괴롭고 저는 어리석지만 아이가 좋은 습관을 갖도록 아이를 육아하고 싶다> 이게 지금 상담자님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괴롭고 어리석은 자신이 육아를 하자면 도대체 어떤 면이 필요할까요? 육아의 괴로움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게 낫겠습니까, 아니면 아이가 좋은 습관을 갖도록 자신의 언어부터 순화하는 습관을 먼저 기르는 게 낫겠습니까? 스스로를 어리석어하며 육아를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희생을 받고자 하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막연히 무엇에 대해서인지도 모르겠는 감사를 갖는 것이 긍정적인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사실 긍정적이라는 건 <내가 현실적으로 육아만을 하는 건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 (사실의 인지), 하지만 나는 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갈등이 있더라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이에게도 나와 함께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믿는다 (갈등과 고통의 승화), 따라서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지원이 충분하지 못 한 지점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원 방안이나 여러 경로를 스스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실질적 대안 간구)>라는 구조를 갖는 겁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고통뿐이라면 굳이 아이를 위해서 육아를 지속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고 (아이 또한 엄마가 이렇게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본인이 원하는 방향을 먼저 찾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아로 괴로울 때도 있지만 행복하기도 하다>는 말을 감춰뒀을 가능성을 저 또한 배제하지 않았으나, 말은 습관이라서 평소에도 <힘들지만 나는 너로 인해 행복하다>를 반복하지 않으면 무심결에 <육아가 고통스럽다>와 같은 말이 계속 나오고, 이는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말은 많이 연습하며 고치고 생각도 그렇습니다. 항상 성공하지는 않지만 저도 늘 이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덧붙여서 상담자가 행복해서 육아를 할 경우 비록 아이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낭패감이 크지 않으나 자기희생으로서 육아를 할 경우 아이가 자신의 의사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분노가 생길 수 있으니, 모쪼록 상담자 본인을 위해서 즐거운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아이 중에는 부모가 굳이 돌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책 읽기를 좋아하고 혼자 잘 노는 애들도 있으므로 이런 애들은 계획만 잘 세워주면 알아서 성장하지만, 부모에게 의지를 강하게 하는 애들은 부득이 옆에서 상관해야 하는 특성은 상담자가 자신의 자녀를 보면서 판단하면 될 거 같습니다. 후자도 가르치면 부모에 대한 의존은 개선되긴 합니다. 


아무래도 부유한 부모 밑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겠지만 저소득층(?)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갖기가 어려울 수 있어서 제가 저소득층(?) 애들이 국가나 여러 지자체, 기타 기관에서 하는 각종 좋은 프로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종로구에서 시범으로 해보자고 제안했으나 종로구가 1년을 시간을 끌더니 보기 좋게 거절해서, 제가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더라면 이용해 보라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네요. 이 사업은 활동비라도 돈이 좀 필요해서 자본 없이 섣불리 시작도 못 한, 제 경제적 한계도 고백을 하겠고요. ^^;;;;;; (저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까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나 이게 또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힘드네요. ^^)


여하튼 상담자 본인이 즐거운 육아가 아니라서 고통이 자꾸 스친다면, 육아에만 매진하라고 권유하기는 누구라도 어렵다고 생각이 듭니다. 모쪼록 아이들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어떤 행위도 관계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