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한글 소리를 아름답게 시로 썼는데 한자로 제목을 짓다뇨
윤동주의 시는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국어가 가질 수 있는 리듬감의 절정을 이루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정주 시인이 최고(?)인 듯하나 친일 역사로 인해 언급하기가 애매해졌음요) 여하튼, 서시로 알려진 이 시만 하더라도 조용히 읊조리면 한국어가 갖는 독특한 음률을 바로 느낄 수 있으며, 따라서 한 번에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갈 수 있죠.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게 왜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긴 내용이라, 일단 다음에 또 쓰겠고요. 음률이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에게 부드러우면 암기도 쉽습니다. ^^ 코란도 아랍 사람들에게는 독특하고 편안한 음률이 있어 암기가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령 (현대의) 랩 음악은 문장의 끝을 통일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는 데, 예를 들어 he(re)로 끝난 다음 문장은 the(re)로 끝나는 식으로요, 그런데 한국어는 반대로 말미를 동일하게 하는 방식보다는 이 시처럼 오히려 다르게 하는 것이 음률을 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한국어의 음률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던 윤동주가 이 시의 이름(?)을 한자인 서시로 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가고 서시 자체가 뭔가 낯설어서 찾아보니, 역시 윤동주는 이 시를 서시라고 작명(?) 한 적이 없고 후대에서 시집 맨 앞의 시라는 의미로 서시로 부르고 있었네요. ^^
윤동주는 시집의 제목은 한글 나열로 지었으면서도 왜 가장 먼저 나오는 시에는 제목도 짓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고 있는데,
그나저나 시인 스스로가 시에 제목을 짓지 않는 것으로 한글 문학의 징수를 보여주려 한 거 같은데 후대에서 임의로 한자 제목을 지어서 배포하니, 의구심이 드네요. 한국중앙연구원이라는 데가 검색이 되고 서시라고 명명된 게 보이는데 이게 무슨 근거가 있는지 한 번 물어나 보겠습니다. 덧붙여서 다시 말씀드리는데 한글 시는 음미하는 것보다 직접 읽어야 그 맛이 납니다. 참 맛있는 소리가 나요. 소리 내서 읽어들 보십시오. ^^ 뒤늦게 덧붙입니다만, 그래서 한국에서는 노래하는 사람들을(?) <소리꾼>이라고 하죠. ^^한국어는 소리 맛입니다.
물론 이 음률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에 한하여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조성돼 있으므로, 불경도 음차 하면서 한글로 발음할 때 자연스러운 음률이 발생하도록 조성돼 있고 아마도 일본 불경도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