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판사라도 썩은 판결 내리면 부끄러운 건데요
근데 이게 일종의 과정인 거 같습니다. 어렸을 때 애들끼리 자기 부모님 이름 얘기하면서 놀리고 울고 막 이러면서 부모님에 대한 어떤 감정을 키우다가 (즉 나를 놀리는 건 그래도 참겠는데 부모를 놀리면 굉장히 분노가 치밀어 오르잖아요, ^^;;;;;), 점점 성장하고 사회 경험도 하고 이러면서 부모님이 그렇게 힘들게 키웠지만 <내가 흙수저라 결국 오르는 데 한계가 있구나> 실감을 하며, 결국 부모님이 <흙수저>인 것에 멈추는, 그런 경우들 있잖아요. 요즘 청년들 많던데요, 흙수저라 안 된다. ^^;;;;
사회에서 보면 <의사도 돈에 미쳤다> 그러고 <판사나 정치인도 다 썩었다>고 하고, 심지어 대통령 부인도 술집 여자라고 조롱받는 그런 시대인데, 판사나 의사처럼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를 둔 자녀들은 딱히 그런 비난에 움츠러들지 않는 거 같은데, 유독 이런 직업 군을 가진 자녀들이 불필요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해도 될 정도의 멘트에 집착하는 거 같아요.
오히려 판사나 의사나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뭐 이런 지배 계층이 썩은 게 더 큰 문제이고, 그런 썩은 지도층 인사의 자녀로 자란 게 더 큰 부끄러움인 거죠. 제가 조선의 안 좋은 점을 하나 꼽으라면 직업적 양심이 아닌 직업 자체에서 비참함을 느끼는 이 부분이라고 봐요. ^^;;;; 쿠팡에서 일해도 열심히 양심적이면 좋은 부모이고, 판사라도 썩은 판결 내리면 부끄러운 부모인 건데, 쿠팡이면 열심히 해도 부끄럽고, 판사면 썩어도 자랑스러운, 뿌리 깊은 직업 차별. 참 안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또 없는 것처럼 하기에는 차별이 있으니까요.
덧붙이자면 나중에 커서 돈 벌어 보면 아빠도 투잡 뛰고 엄마는 새벽에 쿠팡까지 일하는데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딱히 학원도 별로 안 다니고 하는데도 (이 글 쓴 학생은 학원을 많이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왜 우리 집은 그렇게까지 가난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지점이 오기도 합니다. 너무 심각하게 가난해서 위험했던 그 시절이나 이후 성장해서 독립한 기간을 생각하면 이상할 때가 있긴 해요. ^^;;;;;;
여하튼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다가, 또 원망하다가, 또 섭섭해하다가, 또 죄송하다가, 이런 여러 감정이 들락날락하는 그런 게 다 성장인 거 같습니다. 부모가 도박이나 잊지 못할 죄를 지은 게 아니라면 부정적인 감정에만 얽매이는 것도 괴로운 거고, 모든 걸 다 그럴 수도 있었다 하는 것도, 모순에 쌓입니다. 이런 감정도 있고 저런 감정도 있다 생각하면 되는 거 같고, 다만 앞으로의 시대에서까지 그리고 또 지금의 아이들까지 부모의 직업으로 인해 비참함을 느끼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어른들도 생각을 바꿔야 하고, 아이들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앞으로의 시대는 기존의 노동 계약이 아닌 플랫폼 노동 계약의 시대가 될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