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에 스스로 해결하려 하면 더 배웁니다.
지난번에 제가 가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 한 가지 더 추가를 하겠습니다. 만약 제 포스팅을 보는 분들이 제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제가 제 부모님을 비판하는(?) 글을 썼을 때, 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그 강도가 세질 겁니다. <이렇게 괜찮은 자식을 두고 부모가 그랬다는 거냐?> 이런 비판들이죠. 만약 제가 그다지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면 <역시 피는 못 속인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다>라며, 집안 자체가 조롱 거리가 되겠죠.
제가 부모를 칭찬하는 상황을 제외한 이유는 이건 그다지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혹여나 비판할 일이 생기면 <말을 바꿨다>고 비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을 해봐도, 제가 하는 활동과 무관한 부모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포스팅을 할 이득을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요즘 부부 관계에 대한 여러 방송들을 보다가 부인들이 남편들이 병원 등 자기 사적 문제 해결을 위한 장소에 같이 안 가는 문제 등등으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막말로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매번 그렇게 남편이 같이 다녀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드는 제 모습을 상기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왜 이런 문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부모님이 다툼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심각한 상황들도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병원이나 이런 어떤 자기 사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 만큼은 스스로 해결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희 모친은 지금까지 살면서 병원을 다니거나 하는 문제 기타 여러 사적 문제를 가족들과 논의하거나 같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나 심지어 자식인 저에게 불편을 토로한 적이 거의 없으며 (아버지와의 갈등 문제를 제외하고), 지난번 2차 병원(?)에서 갑자기 수술 날짜를 잡으려고 하자, 아무래도 이런 결정은 중요한 거란 생각에서, 저에게 연락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모친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해당 병원을 찾아가 일단 수술 날짜를 취소한 뒤, 서울대병원 등 3차 병원을 알아봤지만 1년 이상 대기를 해야 했고, 따라서 서울삼성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뒤, 다행히 수술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버티다가, 오는 10월에 서울대병원에서 수술 등 관련 상담을 받기로 예약을 해둔 정도인 거죠. 부친 같은 경우는 제가 몇 년 아산 병원이나 서울대병원을 같이 다니긴 했지만, 진료 후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상황 (눈에 주사를 맞는다거나)이라 제가 다닌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부모님의 이런 성향은 저 또한 제 병이나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자라게 했는데, 제가 고 2 때 사타구니에 커다란 혹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은 건 줄 알았지만 만져보니 명확한 경계를 가진 혹이었고 부랴부랴 동네 병원에 가니 임파선에 생긴 혹이라고 하더군요. 의사는 일단 주사를 맞고 휴식을 취해보자고 했지만 임파선에 생긴 혹으로 걷는 데 어려움이 발생했고, 속으로는 사실 겁이 났더랬습니다.
병원은 주사를 맞고도 가라앉지 않자 급성 신우염이나 혹은 임파선염으로 임파선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면서 부모님을 데리고 오라고 했으나, 저는 진단서를 작성해 달라고 한 뒤 그 진단서의 기간을 17일로 임의 수정하고 이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해 17일 간 야간 자율 학습을 빠졌습니다. 병원에서 주사 맞고 다음 날 학교 갈 때까지 잠만 자고 했더니, 신기하게도 임파선에 있던 혹은 가라앉았으며 의사의 말대로 제가 무리를 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 모친은 제가 이렇게 17일 간 야간 자율 학습을 안 갔던 기억을 전혀 하지 못 하며, 이럴 정도로 저나 가족은 심지어 병에 대해서도 나름 스스로 해결하며 자란 걸 알게 된 거죠.
제가 이렇게 자란 것이 좋은 것이냐,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문제를 어떻든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한 편 이에 대해 지나치게 가족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이 문제로 서로를 너무 괴롭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아플 때마다 남편이 병원을 같이 가주면 너무 좋고 마음이 의지도 되겠지만 큰 수술도 아니고 계속 정기적으로 다녀야 되는 병원을 같이 매번 가 달라면서 섭섭해하는 마음을 갖는 게 나은 건지 모르겠는 거죠. 저는 주로 가족 (지인도 그렇습니다)의 첫 진단 시에는 같이 가는 편이고 중간 진료는 혼자 보게 하다가 혼자 걸어서 집에 못 가는 상황에서는 같이 가는 정도로 일정을 잡습니다.
마음에서 털어버리는 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굳이 움켜쥐고 살 필요는 없는 가족으로부터의 기대나 호의나 선의는 스스로 해결하는 게 어떻든 저는 좋은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을 스스로 해결하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고 그 배움 덕분에 제가 또 부모님 문제를 해결할 때도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 해결해 주고 의지할 수 있기를 기다리다가는, 그 기다리는 시간에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놓친다고도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아픈데, 기대가 흐트러지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돼서 치료에도 안 좋을 거 같습니다. 물론 가족이 아플 때 같이 병원을 가주면서 좋은 면도 많고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그게 기대로서 충족이 안된다는 이유로 너무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저와 부모님의 관계였기 때문에, 제가 프랑스 파리에 있을 때 저에게 묻지도 않고 제 모친이 폐업 신고를 했다는 세무서 직원들의 설명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부모나 모친이 제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하고 이런 성향이 전혀 아닌데 (저는 이 부분은 저와 맞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저한테 있는 일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 제 모친이, 스스로 제 사업장 폐업 신고를????? 저는 이 지점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이 문제로 가족들도 너무 고통을 받았기에 여기까지 언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