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c5 mrIgzehI? si=YBJmKg9 KEeYyPouz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광고회사(?)를 다니며 전업 작가를 고민하던 시기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노르웨이의 숲이나 이후 작품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답다> 정도로 봅니다. 일본인이지만 영문 서적을 번역하는 소설가답게 그의 소설은 기존 일본문학과는 다른 상당한 무미건조함 (일본 작품들의 감정 과잉이나 캐릭터에 매몰되는 결말과는 다른)이 나타나고 그 속에 인간 모순에 대한 간결한 통찰이 있죠. 보통 소설가는 민족 언어(정서)에 통달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접해야 하는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는 많진 않으며, 그런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어와 영어의 갭을 인지하는 작가라고도 봅니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어와 영어의 갭을 이용하는 부분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덕분인지 뭔지, 하루키는 일본 소설가 중 아니 현존하는 작가들 중 가장 유명하며 따라서 국가 간 경쟁의식(?)이 강한 한국에서도 이 기사처럼 신간이 나올 때마다 예약판매가 엄청나죠. 예약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는 소설가는 상당히 드물며, 게다가 판타지나 유희가 아닌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작가는 하루키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 정도 작가가 된 자체, 누군가 전 세계에서 자신의 책을 기다려준다는 사실만으로 노벨상 이상의 영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노벨상 문학상은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수상되는 상은 아니고, 통상은 민족에게 깊은 서사를 주거나 본인의 어떤 숙명적 한계를 담대히 표현하거나 정치적으로 위험을 불사할 수 있거나 세계에 자신들의 특수한 상황을 전하는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수상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해당 작가는 논쟁적인 부분에서나 서사적인 측면 혹은 미적 측면에서라도 민족에게 분명한 인식을 주죠. 그런 측면에서 한강 작가의 수상은 솔직히 다소 의외입니다. 노벨상이 한국인들도 모르는 작가를 발굴해 줄 수도 있긴 하겠으나, 적어도 지금까지 수상자들은 노벨상 이전에 동시대 인물이나 최소한 민족에게 어떤 의식을 줬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강 작가의 수상이 알려지자 한국인들은 이제야 해당 작가의 소설을 구매하겠다고 서점 앞에 줄을 서고 있고, 저는 이게 상당히 의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이 먼저 사랑하고 이어서 전 세계인이 사랑해서 수상한 노벨상은 봤어도, 사랑이 아니면 논쟁 중심에 서는 것도 봤어도, 노벨상이 선포하자 한국인들이 찾아본다라.
글쎄요. 노벨상이 권위 있는 상인 건 알겠는데, 통상 대중으로부터 올라간 작가에게 부여됐던 상이 이번에는 노벨상에서 반대로 대중으로 간 게 의아하고, 그 점에서 한국인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리는 한편 앞으로는 대중에게 울림을 주며 시작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