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없는 약은 없습니다, 안 하면 죽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보니 관련한 카페에 가입이 돼있습니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로써 딱히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중단하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환우들 글을 가끔 읽기만 하고 그러다가, 최근에는 약물을 대폭 줄인 상황이라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정신병뿐만 아니라 어느 병이라도 약물을 장기 복용하면 각종 부작용이 생깁니다. 어떤 분들은 약물을 복용하자마자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때문에 정신과 상담 및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거에 대한 저의 사견입니다.
정신병이 발병하고 정신과를 다니게 되면 정신과에서 주로 하는 일은 약 처방입니다. 방송이나 이런 데서 정신과 의사분들이 환자의 내면까지도 이해해 주고 원인도 밝혀주면서 환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해하게 할 정도로 상담을 해주기도 하던데, 실제로는 상담 시간 안에 약에 대해서 말하기도 짧죠. 획기적인 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가, 증세를 열거하면 약 처방이 느는 정도로, 저는 그렇게 치료를 받아 왔어요. 딱히 정신과 상담을 통해서 어떤 기저에 있는 원인까지 알게 되는 정도로는 상담이 진행되지 않았다랄까요. 저와 다르게 상담을 받으신 분들은 일단 제 경험이니, 참고로 하시면 좋겠고요.
처음 정신과를 다닐 때는 당시 사건 사고가 워낙에 많기도 했거니와 정신없이 바빠서 무슨 약을 어떻게 처방받는 줄도 모른 채로 무작정 약만 복용하고 어떻게든 잠을 자려는 것에 집중을 했었고, 시간이 좀 지나면서 약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그렇게 서서히 정신과 치료에 적응을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전 중에는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 만큼의 무기력과 집중력 저하를 느끼기 시작했고 신체적으로도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발진이 생겼는데 그 정도가 심해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그 밖에 약으로 인한 부작용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각종 신체 증상들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약을 조금씩 줄여야겠다고 처음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단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지속되는 것에 불안이 생겼어요. 그런데 약을 줄이려고 할 때마다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저를 따라다니는 듯한 망상적 사고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도는 매번 실패했습니다. 약을 줄여달라고 했다가 늘여 달라고 했다가를 반복했어요. 그런데 망상뿐만 아니라 신체 증상까지 발현하고 있는 탓에 약을 먹어도 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신체 증상이라도 호전시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고 약을 줄이기 시작했고, 네다섯 알이었던 약은 현재 두 알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저도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안 먹고 임의로 줄여도 보고 병원 가서 나중에 고백해서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도 받고, 그런 과정들은 다 있었고요. 버렸다가 주워왔다가 뱉었다가 삼켰다가 다 그런 갈등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약 없이 자보려고, 스스로의 의지로 정상 생활(?)을 하자고 삼일 내내 햇볕도 쏘여 보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어도 보고 진짜 별 짓 다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신과 치료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최근 들어 조현병이나 기타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에 의한 범죄가 연일 보도되면서 항상 언급되는 것은 최근 들어 정신과 치료를 중단한 채 약 복용도 중단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 사회가 연일 비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해 본 분들은 정신과 약이 만능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러 부작용이 있다는 데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지만, 결국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 정신병자들의 경우 대부분 약물 치료를 중단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은 부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약물 부작용 때문에 약을 중단했는데 결국 살인이나 방화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 부작용을 안고라도 사회에 악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사회 일반의 시선인 거죠.
현재 국회 등 정치권에서는 정신병자에 의한 사건 사고가 너무나 빈번해지자 사법적 입원이라는 제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전체 범죄에서 정신병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2% 정도로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사건의 잔혹성이나 사회적 여파가 너무나 크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죠. 이는 범죄자의 정신과 치료를 판사의 결정으로 강제하는 방식인데요. 저는 이거에 대해서 아직은 찬성도 반대도 하고 있지 않지만, 정신병자들이 약물 복용을 중단한 채 범죄자가 되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한다면 추진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자 입장에서야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 정신과 치료도 그만두었다고 할지 몰라도, 그렇게 약물과 정신과 치료를 중단했을 때 상태가 좋아지지 못한다면, 사회에서는 막연한 부작용보다 안전한 재활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약물과 정신과 상담 중단은 신중하게 결정하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심각해지면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환자에 비해서 받지 않은 환자에 대해 사회의 비난이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가족이 이를 방치하였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가족이나 지인 입장에서는 정신병자 가족이 겪는 약물 부작용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스스로 일어서라는 의미로 약물 및 정신과 치료를 중단했다고 할지 몰라도, 사회에서는 약물로 인해 부작용이 있었어도 범죄는 저지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결정을 존중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약물 복용과 정신과 진료를 그만둔다는 것은 정신병자 가족으로 인해 발생할 모든 피해를 해당 가족이 온전히 짊어지겠다는 의미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정신과 약 복용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약물 중단에 따른 모든 책임이 본인과 가족에게 귀결된다는 점을 인지하셔서 모쪼록 현명한 결정 내리면 좋겠습니다. 입증되지 않는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약물을 끊고도 사회에 어떠한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충분한 확신 하에서 결정하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암 환자가 먹는 항암제나 신장 투석하는 분들도 이게 자신의 병을 완벽하게 고쳐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장기의 부전이나 심각한 부종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작용에 고통받으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떤 약물도 1의 부작용 없이 병만 완벽하게 고치는 경우는 없고요, 정신과 약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