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들이 착한 행동으로만 유명한 경우가 많지 않아요
https://youtu.be/VEVvHriLElk? si=E3 xmbv_VZiZ9 Iy0 V
지금 생각하면 참 끔찍한 일인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자 들고 다니면서 머리 길이를 측정해서 그 길이 이상으로 길면 실제로 가위를 들고 오긴 했습니다. 안 자르면 머리채나 귓불을 잡아서 계단을 질질 끌고 내려가곤 했으니까, 이런 정도의 폭력은 사실 장난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였죠. 아마 선생님이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서 해당 아동에게 별생각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실제로 제 선배 중에는 선생님에게 맞아서 고막이 나간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 이런 배경에서 자라게 되면 그게 그렇게 큰 일로 느껴지지가 않죠. 그리고 이게 여고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거.
사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게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아니지만 당하는 사람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가 있어서 저도 학창 시절에 친구의 지시 아닌 지시로 앞에 앉은 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늉을 하고 부채질로 머리카락 날리는 장난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애 엄마가 반 애들 십수 명을 자기 집으로 불러서 타이른 적이 있긴 합니다. 장난으로 뒤에서 부채질을 했는데 그걸 그대로 믿는다고 애들끼리 웃고 떠들었던 그런 못된 시절이 있긴 하네요, 돌아보니까.
이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인기가 너무 많아져서 남자애들에게 편지를 받다 보니까, 애들이 질투를 했는지 어떤지, 그 애가 오기 전에 서랍을 뒤져서 편지를 훔쳐보고 진짜 그렇게 장난을 많이 쳤고, 답장을 자기들이 거짓으로 작성해서 보내기도 하고, 그랬긴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늉만 했는데 그 애를 괴롭힌 애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 애 집에 불려 간 애들이 저를 포함해서 십 수 명이었던 거죠. 그 애 엄마는 자기 자녀를 왕따 한 애들인데도 컵라면을 줬던 기억도 나요.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뭐 이런 느낌.
처음에는 왕따 가해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누굴 특정하지 못하다가 그중에 제 가장 친한 친구가 결국 주동자로 밝혀져서 담임이 그 친구만 불러서 혼을 냈었고, 그때 또 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너는 친구가 그런 짓을 하면 말려야지, 너도 같이 하면 되냐>고 뭐라 했던 기억도 나고요. 근데 저는 일단 친구가 중요하니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도 죄의식도 없고 그랬죠. 저도 이 친구로 인해서 왕따가 됐다 보니까, 이 친구 말에 상당히 복종적이었던 면도 있었고요. 이 친구가 하라면 거절을 못했던 것도 같습니다, 지금 보면. 이 친구가 싫어하면 저도 무조건 싫어하고 경계하고 못되게 굴고 그랬던 거 같아요.
중학생 시기를 그렇게 보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한 번 사람을 신뢰하면 의심 없이 잘 따르고 심지어 나쁜 짓도 아무 죄의식 없이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 이후로는 친한 사람을 거의 안 만드는 편이 됐습니다. 제가 잘 친해지진 않는데 막상 아주 친해지면 비판 의식이 상당히 결여되는 성격이더라고요.
다행히 머리카락을 자른 시늉을 한 애와는 고등학교 때 화해하고 편지 주고받고 그러면서 오해했다 풀긴 했는데, 여하튼, 지금에 와서 보면 <내가 살기 위해서, 내 편이면 좋다는 인식을 위해, 싫은 사람에게 나쁜 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저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죠. <내가 왕따를 당했으니까 당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렇게 변명한다고 해도 이 시기 잘못은 잘못입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이게 사실 조폭 논리로, <내 편 되면 편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 <내 편을 거부하는 애들에게 보란 듯이 잔인하게 행동하는> 그런 맥락인데, 그 어린 십 대 시절에 가능하다는 게 지금 봐도 충격이죠. 덕분에 저도 죽을 정도로 많이 맞고 다치고 했습니다만, 제가 그런 일을 당한 것과 무관하게 피해를 본 애들도 있겠죠. 그래서 문제 청소년들 봉사 활동도 지원했습니다만, 다 거절을 당해서. ^^;;;;;;;
어떤 면에서 더 문제를 꼽자면, 제가 조용히 공부하던 시기에는 친구도 없고 외톨이에 가까웠던 반면 이렇게 못되게 굴었던 시기에는 친구도 많고 인기도 많고 그랬다는 점이겠죠. 학교에 가면 애들이 편지 주고 내가 없었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다 설명해 주고 먹을 것도 주고 그랬다는 거. 나쁜 짓을 할수록 인기가 많았으니까 제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달까요. 머리를 갑자기 염색하고 반 애들이 싫어하는 애들에게 못되게 굴어주고 제 멋대로 행동할수록 친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거죠. 물론 그만큼 저를 싫어하는 애들도 늘긴 했습니다만. 응징으로 맞서면 됐던 거니까.
마치 지금 인플루언서들이 항상 좋은 행동만 하는 게 아니라 기괴한 행동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하게, 어딘가에서 묵묵하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기괴하고 끔찍한 짓을 해야만 뉴스를 도배하는 것처럼, 당시 저는 애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나쁜 짓도 죄의식이 없이 할 수 있었던 상태였었고, 지금은 이를 후회하는 덕분에, 아무리 돈과 인기가 생긴다 하더라도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거절할 용기는 생기긴 했습니다.
나쁜 짓을 안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자신이 나쁜 행동을 죄의식 없이 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만약 제가 어린 시절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저 스스로는 항상 옳고 바른 일만 한다는 자만에 빠졌더라면, 제가 한 십 년 넘게 겪은 온갖 이상하고 억울한 일들을 견뎌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착한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세상을 증오하다가 진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생각보다 중범죄자들이 평소 착하고 유순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은 것도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에서 오는 거 같거든요.
여하튼, 머리카락 자른 기사를 보다 보니까 생각이 불현듯 나서 본의 아니게 상관없는 댓글을 단 것 같은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 그게 문제인지 모릅니다. 제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도 폭력이 상당히 당연한 것이었고 또 애들도 나쁜 행동을 하면 오히려 인기가 있었으므로, 그게 멋있는 건 줄 알았던 면이 있어서, 선생님이 이 시절 사고에 침잠한 게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