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양아치를 일진이라고 하네요

일진이 존재했던 생리적 이유

by 이이진

학창 시절 일진이 좋은 일을 한다고는 말하기가 그렇지만 일단 반에서 약자랑 외톨이를 괴롭히는 건 일진이 아니라 양아치라고 부릅니다.


물론 일진 중에도 반에서 약하거나 예쁘거나 하는 애들을 터무니없이 괴롭히는 애들도 있고 고약한 애들도 있긴 하지만, 통상 애들이 결국에 일진이다라고 할 때는 약자가 아니라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애들을 평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죠. 학생 사이 모든 문제를 선생님들이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그 안에서 그 질서를 위배하는 애들에 대한 일종의 견제권을 갖는 게 일진입니다.


만약 반에서 어떤 아이들이 싸울 경우에 일진들이 그 싸움을 잠재우는 겁니다. 따라서 일진이 싸움을 잘하는 경우 그 반 전체 혹은 학년 전체가 편해집니다. 이게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힘의 논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진이 되기 위해서 각 집단 간 견제가 늘 있곤 하죠. 지금 보면 참 웃긴 건데.


당시에는 학교 자체도 군대나 무슨 조폭처럼 힘의 논리, 마치 계급 논리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했죠. 그 학교의 일진이 싸움을 잘하면 다른 학교 애들에게 길에서 돈을 뺏기거나 하는 일을 당하지 않고 누구 이름을 대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는 것들이 가능했던 겁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일진에게 아이들이 달려와서 말을 하곤 합니다. 따라서 일진이 된다는 것은 자기와 관련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다툼을 해야 하는 일을 맡아야 합니다. 이 영역은 선생님들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인 거죠. 법이 만들어지긴 전 무법 시대에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던 것과 비슷한 그런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로리라는 작품을 보면 약자를 무작정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일련의 폭행 무리가 마치 일진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일진이 변경된 게 아니라 그거는 그냥 양아치로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런 애들을 박살 내는 게 일진이라고 보시면 되는 거죠. 그 질서를 위해서 일진이 행하는 폭력이 정당화는 되는 모순은 일단 차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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