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뜨거운 날, 길 위에서 만난 고요한 품격
한낮의 열기가 아스팔트를 지글지글 달구고 있었다.
7월 초, 햇살은 머리 위로 사정없이 내려꽂히고, 횡단보도 앞은 뜨거운 숨으로 눅진하게 차올랐다.
양산을 든 사람, 냉음료를 마시는 사람, 연신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
신호등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더위를 견디는 각자의 방식만 다를 뿐, 텁텁한 숨결은 후덥지근하게 엉켜 무거움으로 가득했다.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자 사람들은 서둘러 발을 옮겼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틈에서 유독 느리게 걷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8차선 도로의 중간쯤, 초로의 남성이 휘청이며 중심을 잃더니 이내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뒤따르던 두 젊은 남자가 놀란 듯 다가가서 부축하며 두세 걸음 걸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몸이 축 가라앉고, 그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온열 질환일지도 몰라.’
순간, 불안과 걱정이 밀려왔다.
여러 사람이 그를 도로에 조심스레 눕히자, 몇몇 손길이 모여들었다.
움직임은 말없이 시작되었다.
여러 개의 양산이 모여들어 강한 햇살을 막는 그늘이 되었다.
누군가는 차가운 음료수 용기를 그의 뺨에 댔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염려 섞인 목소리가 반복되었고, 누군가는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이가 건넨 생수는 그의 입술에 조심스레 닿았고, 창백하던 얼굴빛이 서서히 돌아왔다.
감겼던 눈이 천천히 떠지고, 그는 다시 고른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일어나려는 그를 또 다른 손길이 부축했고, 조심스럽게 그를 횡단보도 너머의 그늘로 이끌었다.
그가 쓰러졌던 도로 한가운데, 몇 분 동안 차량 통행이 막혔던 두 개의 차선에서 시간은 멈춘 듯 흘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불평도 짜증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필요한 행동들이 물 흐르듯 이어졌을 뿐인 한낮의 연대.
양산을 들고 그분의 머리맡을 가려주던 사람 중 한 명이 나였다.
말없이 손을 보태는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느꼈다.
‘이 얼마나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시민의식인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 〈앙티브〉를 떠올렸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짙푸른 바다와, 바람결에 잎을 흔들며 그늘을 드리울 듯 서 있는 굽은 나무. 그 청량한 풍경 속엔 말 없는 연대와 고요한 질서가 은은히 스며 있었다.
빛과 바람, 바다와 나무가 공존하면서 어우러지는 그 조화처럼, 마치 그 무더운 날의 횡단보도 위에도 그 조화로운 고요한 질서가 흐르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그늘을 드리우는 마음처럼.
자연의 풍경이 그러하듯,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빛의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이 마음을 깊이 물들였다.
그때 떠오른 이가 있었다.
미국 대학의 한 사회학과 교수.
그는 강의 중 종종 한국 시민들의 공동체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칭찬의 말들이 과장처럼 느껴졌던 때도 있었지만,
그날, 내 눈앞의 그 풍경이 그의 모든 언급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언어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더 높은 결의 수준으로 증명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파헬벨의 <캐논 (피아노 D)> 선율이 지금 내 공간을 조용히 채우고 있다.
조화와 반복, 절제와 상승이 어우러진 이 곡의 흐름은, 고전적 아름다운 질서 속에 숨은 인간애의 울림처럼, 그날의 장면과 겹쳐 흐른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향해 자발적으로 내미는 손.
그 손끝에서 나는 우리의 희망을 보았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지탱하는 힘, 가장 본질적인 가치란 화려한 구호도 제도도 아닌, 그늘 하나를 내어주는 용기.
눈길 하나, 손짓 하나에서 피어나는 말 없는 연대가 바로 우리 사회의 품격일지 모른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일찍 더워졌다.
기록적인 무더위가 우리를 지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뜨거운 길 위에서도 사람들의 시선과 손길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그늘이자, 더위 속의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