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와 꽃바구니, 그리고 봄의 노래
늦은 오후, 시장 한복판.
짐을 잔뜩 실은 수레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고 있었다.
접힌 골판지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사람 키를 훌쩍 넘었고, 허술한 두 바퀴는 삐걱거리며 짐을 버텨내고 있었다.
짐의 무게와 시간의 흔적이 엉켜 있는 수레, 그러나 수레를 끄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수레는 주부들이 시장을 볼 때 사용하는 두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에 나무판자를 얹어 만든 것이었다.
오랜 시간의 무게를 견디느라 닳고 낡은 바퀴는, 삐걱대는 소리로 숨결을 토해내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마침내 수레를 끄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좁은 어깨, 굽은 등,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
그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길바닥에 버려진 종이 상자를 집어 들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은 상자를 짐 틈새에 조심스레 끼워 넣고 다시 수레를 끌었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의 과거가,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겹쳐 보였다.
나는 걱정스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곧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괜찮으실까.’
완만해 보이는 경사였지만 오르기에는 모든 여건이 녹록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제가 뒤에서 밀어드릴게요”
“아유, 고마워요”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할머니는 수레 손잡이에 걸려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꺼낸 요쿠르트 하나를 내게 건넜다.
낡은 수레에서 건너온 따뜻한 선물이었다.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마음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조금 더 가면 가파른 오르막이 있는데...’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누군가의 손길이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따뜻함이 남아 있으니까.
그때,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중 <꽃 파는 사람>.
화려하게 만개한 칼라릴리로 가득 찬 꽃바구니를 등에 짊어진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소녀.
얼굴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몸짓에서 고단함이 짙게 전해져온다.
연두색 줄기로부터 힘차게 뻗어 올라 우아한 곡선으로 펼쳐진 순백의 꽃잎.
그리스어로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라.
‘칼라릴리’는 그 이름처럼 만인을 매혹하듯 눈부시게 찬란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무게는 소녀에게 버겁고 무거운 생계의 짐이다.
소녀는 덩치보다 큰 꽃바구니의 끈을 어깨에 묶고, 흘러내리지 않게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다.
한편으로는, 팽팽하게 조여오는 끈이 가하는 압박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손으로 여유 공간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꽃을 목적지까지 운반하기 위해서 고통을 삼키고 묵묵히 견디는 모습이다.
아름다움이 만개한 꽃과 고달픈 소녀의 모습.
두 풍경은 하나의 그림 속에서 선명히 갈라지고 있었다.
바구니 밑의 두 발, 바구니 테두리의 두 손, 꽃 위의 밀짚모자.
소녀의 뒤에서 누군가 꽃바구니를 받쳐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그 손이 있기에 버거운 짐을 지고 일어서서 목적지를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다.
소녀는 꽃을 팔아 얻을 이익이 삶을 지탱해 줄 것이라는 희망 하나에 기대어,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무게를 묵묵히 견디고 있을 것이다.
고달픔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이 장면은,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과 다르지 않다.
낡은 수레 위의 종이 상자와 소녀의 등에 얹힌 꽃바구니.
그 무게는 고통이면서도 어쩌면 희망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오늘도, 그 무게를 감내하며 살아간다.
삶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지만, 누군가가 나의 짐을 잠시라도 받쳐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진 삶의 바구니가 가벼워지고 다시 걷게 된다.
그 믿음이 있는 한,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길가의 봄꽃들.
그리고 어제 길바닥에서 본, 누군가가 길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잎으로 만든 하트.
그 익명의 설치작품 앞에 멈춰 한참 서 있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 봄, 누군가의 손이 꽃바구니를 받쳐주듯, 누군가의 손이 우리를 지탱해 주기를, 나 또한 그 손이길.
삶이 무겁더라도 그 안에 작은 온기와 예술이 스며 있다면, 우리는 다시 발을 내디딘다.
누군가의 손길이 우리의 짐을 잠시라도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봄처럼 피어나는 용기를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