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성 Apr 26. 2021

작업실로 들어가며

중학교 때 처음 미술학원을 찾게 된 나는, '어쩌다 보니' 20년이 지난 후 직업 예술가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직업이 예술가라는 것이지 예술가로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예술가는 남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남다른 가정이나 남다른 재능이 있는 예술가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보통 재능과 성격, 그리고 보통 가정배경의 예술가는 그저 한 사회 안의 구성원이며, 회사원이나 자영업자가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적 제약과 보이지 않는 계층 또는 계급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사회적 제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물리적이고 가시적이다. 시각 예술가인 나를 예로 들면 작업실 studio/atelier이 그렇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삶을 살아보려고 했을 때 나를 가로막은 것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의 부재였다. 여기서부터 예술가가 던질 수 있는 사회적 질문이 시작되었다.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는 예술가는 과연 어디서 자신의 삶과 일의 방점을 찍어야 하는가?


작업실에 대한 나의 질문은 1900년대 후반 서구의 예술가들이 던진 studio에 대한 질문의 성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들은 작업실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구조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현대미술사에서는 institutional critique이라고 분류되는 이 방법론은 당시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예술기관이 만들어내고 있는 모순된 생태계를 조사하고 드러내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다. 이들에게 작업실은 갤러리나 미술관의 미술사업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관계자들은 작업실을 찾아와 제품의 생산자인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작업실은 독립된 진공상태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들을 연예인으로 만드는 예술 기관과 예술가들의 욕망이 만나고 싹트는 모판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욕망을 키울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는 예술가들이 생각보다 많다. 마치 땅 없는 농부와 같이.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창작욕구를 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이미지는 점차 언어로 바뀌어 갔다. 이 공간은, 그러므로, 나의 작업실이다. 내가 예술과 만나는 곳. 그리고 예술가로서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곳. 때로는 사적이고, 때로는 매우 공적인.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감추는 곳.


서론의 마지막 문단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1961년판 서문으로 마치고 싶다. 그분이 묘사한 광장과 밀실이, 혹은 그 둘을 잇는 통로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작업실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쫓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 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 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진 것이다.

1961년 2월 5일

저   자


*소설 '광장'의 주인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