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성 Apr 30. 2021

마치 이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욕망 중 하나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애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변인들에게, 죽어서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대화 속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관심 속에서 살기 원한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록하고 또 은연중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봐주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기억되고 싶은 욕망은 다른 면으로 잊힘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자신이 한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다수가 향해가는 흐름을 거스르려는 용기를 억누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했을 때 겪게 될 일종의 소외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살다가는 것, 즉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삶은 그토록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일까?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일까? 마치 이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산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이는 이름이 기억될 수 있는 자리에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은 자리와 역할이 주어진다. 그건 정해진 숙명이라기보다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계속 잊힐 수 있는 자리에 서고자 하는 의지. 마침내는, 마치 그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자리, 그 자신의 이름이 드러날 여지가 없는 자리를 향해 가는 인생. 


만약 그가 자신의 삶을 숙명에 오롯이 내어주지 않고 의지와 함께 그 자리를 향해가는 것이라면, 그 자리는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자리이다. 나를 그리워하는 이들로부터 떠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로 가는 것. 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내 진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서 진짜 사람으로 살아가기. 이름이 아니라, 공로나 업적이 아니라, 내 실존의 흔적을 남기기. 


그가 떠난 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지켜낸 충실함이다. 그리고 그 충실함이야 말로 이 세상의 불완전한 조각을 채우는 꽉 찬 실존일 수 있다.

이전 01화 작업실로 들어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