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된 어느 날이, 어느새 10주기를 맞아가고 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영화에 대한 글을 기고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12개월 중 딱 하루 생일, 이 세상에 존재함에 대해 축하를 받는다. <생일>은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드는 걱정들이 있었다. 혹여나 가족들의 아픔이 미디어를 통해 더 커질까 봐. 그렇지만 <생일>은 그날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사건 이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노란 리본과 고등학생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어 연출하였다. 영화는 마음을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에 꼬박 담은 담담한 생일파티로 진행되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날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4월의 그 날로 별이 된 수호의 생일을 준비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많은데, 여기서 참사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사건을 직접 겪은 부모님들은 정부 측에서 주는 위로금을 안 받겠다고 하는 반면, 줄 때 그냥 바로 받는 부모님도 있고, 사건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뭔데 저렇게 대학교도 특별 전형으로 위로금도 몇억씩이나 주냐"는 이제 지겹다는 말들이 표출된다. 여기서 참사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또 수호의 동생인 예솔이가 느끼는 트라우마적인 부분에서도 잘 다루어져있다. 수호를 잃은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하는 행동들이 어린 예솔이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영화 중간에선 모든 수식어에 예솔이가 아닌 오빠 수호가 먼저 붙는다. 하지만 예솔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쉽게 표출 해내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 뒤엔 그 슬픔에 자신의 감정까지 삼켜내야 하는 어린 딸 예솔이가 있어 보는 관객은 더 안타까움을 느낀다.
어느 날, 예솔이는 아빠에게 전등을 고쳐 달라고 한다. 깜빡거리는 전등조차 오빠라고 의미 부여하는 엄마는 하염없이 전등이 켜지길 기다린다. 그런 예솔이는 엄마의 모습에 속상하지만, 깜빡이는 전등이 고쳐나면 자신을 봐줄까 하는 마음으로 전등이 고쳐지길 바란다. 또 학교에서 부모님과 함께 갯벌 체험을 가지만 예솔이는 바닷가에 차마 발을 들이지 못한다. 그런 예솔이의 아빠는 잘 타일러 안고 바닷가로 들어가 보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에선 바다는 큰 상처로 기억되어 발버둥 쳐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생일>은 스토리에서 눈물이 날 상황들이 많았지만, 영화의 윤리적인 부분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여기서 배우들이 감정을 있는 대로 다 표현해냈다면, 이 영화는 부적절한 신파극과 더불어 윤리성에서 완전히 어긋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떠날 때 앞모습의 표정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때론 무작정 눈물을 표하는 것보다 담담함이 보여주는 쓸쓸함이 더 와닿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롱테이크로 담긴 30분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 장면은 몽타주 기법의 불필요성을 보여준다. 길게 찍음으로써 컷이 바뀌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오직 감정과 상황에만 집중하라는 감독의 메시지 같기도 했다.
모두가 편지를 읽고 프레젠테이션을 넘겨보는 마지막 즈음의 장면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는데 여기서 눌러온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 눈물이 허용되는 순간이다. 이 상황에서는 눈물은 절대적인 눈물이다. 수호의 부모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중 하나뿐인 아들이 참사에 희생되며, 가족들의 일상생활은 당연히 온전하지 못하다. 이러한 슬픔을 절제된 담담함으로 쭉 보여준다. 슬픔을 삼키는 이들의 모습에 관객은 안타깝기도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수호의 생일파티를 하며, 사람들은 한 명씩 참아왔던 눈물을 수호 앞에서 솔직히 드러낸다. 이 장면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찍는데, 마치 수호가 천천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며, 이 영화의 카테고리인 위로와 담담함으로 가슴에 쓸쓸한 멍울진 듯 끝을 맺는 작품이었다.
세월은 흘러 다시 봄이 왔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티브이 앞에 온 가족이 앉아 마음으로 한 명 한 명을 간절하게 빌었던 날. 묘하게 아리던 뒤통수와 내려앉은 기분들. 다음 날 모두가 조심스러워했던 첫마디도. 10년이 흐른 지금 다시 그날이 온다. 나는 그저 기억하고 되새길 뿐이다.
아이야, 다시 따스한 봄이 왔어. 우리 함께 봄 맞으러 가자.
아주 오래도록 기억이 될게. 다시 끔 어디에 있든 밝고 따뜻한 곳에서 늘 평안하길 간절히 바랄게.
2014년의 따뜻한 봄 나비들에게
2024년 한 노란 리본이 씀.
추신: 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심스레 한 자 한 자 생각을 해서 내려쓴 글이지만, 혹여나 밀어 오는 감정에 조금이라도 해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절대 그럴 의도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