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저 너머를 꿈꾸며

by 아트인사이트


최근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에 잠깐 거리에 나간 적이 있다. 폭염경보라는 말에 걸맞게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과 더위에 금세 온몸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서울을 기준으로 요즘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온다. 분명 작년 이맘 때쯤에는 장마로 매일같이 비가 내렸었는데, 올해는 유난히도 비 소식이 적다. 뜨거운 땅을 시원한 빗방울이 식혀줬으면 좋겠건만, 야속하게도 매일 접속해보는 기상청에는 비 소식이 들리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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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에는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렸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아침부터 습했다. 가뜩이나 더운데 공기가 습하기까지 하니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드라이기의 바람처럼 느껴져서 더욱 불쾌해졌다. 심지어 퇴근길은 그 습기와 그 더위가 절정에 이르러선 불쾌함을 넘어 날씨에 의아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버스를 타고 에어컨 각도를 조정해도 도저히 시원해지지가 않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턱턱 막히는 숨을 한꺼번에 내보내길 수십 차례였다. 그 한숨을 멈추게 만든 건 창문과 딱 붙어있던 귓가에 들리던 의문의 소리. 그 소리는 '투둑, '투둑' 하고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였다. 깜짝 놀라 밖을 보니 하늘을 가득 뒤덮은 비구름과 그 너머의 붉은 노을이 섞여 분홍빛의 회색 광경과 함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록 바지 밑단이 젖어들긴 했지만 오랜만에 내린 비로 인해 더위는 잠깐 잊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바닥엔 빗물이 고이고 거리의 간판이 내뿜는 빛이 빗물에 아른거린다.


문득 어릴 적에도 무더운 날 비가 내렸던 게 기억난다. 그 때에도 간판이 바닥에 고인 빗물에 반사되어 거울처럼 보였다. 간혹, 고인 빗물이 기름 때문에 무지개빛으로 빛나기도 했었다. 어릴 때의 난 그게 뭔지도 모르고 '비가 오면 무지개가 바닥에 생기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본 건, 그 생각을 처음으로 한 시점 기준으로 한참 뒤의 일이었던 지라 어릴 적의 내게 무지개는 바닥에 피어나던 것이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항상 바닥을 보았다. 어느 곳에 무지개가 떠있을지 모르니 간헐적으로 그걸 찾아내면 아주 기뻤기 때문이다.


저녁에 소나기가 내렸던 그 날, 집에 걸어가며 'over the rainbow' 노래가 생각났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초반에 부르는 노래이다. 제대로 된 사랑은 커녕 구박받으며 살아가는 '도로시'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 내가 바라는 세상이 있을 것이라며 소망을 이야기하는 노래다. 비가 오니 무지개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라서든, 아니면 너무 더워서 안 더운 세상을 꿈꿔서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over the rainbow' 노래가 생각이 나 오랜만에 노래를 들었다. 어릴 적엔 마냥 멜로디가 좋고 가사가 이해하기 쉬워 좋아했던 노래인데, 가사를 다시 들어보니 괜시리 나도 무지개 저 너머의 이상향을 꿈꾸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보이지도 않는 무지개의 저 너머는 시원한 바람이 불겠지'라고 상상하던 그 세계는 점차 진지해졌다. 누적된 피로에 다리가 부어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세상, 내 주변인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세상, 그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행복해지는 세상. 정작, 눈에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비 내린 늦은 저녁이었는데 말이다.


무지개라는 건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모두 보여주기 때문에 환상적이다. 그 아름다운 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꼭 꿈을 꾸는 것 같다. 그 잠깐의 시간은 정말로 무지개 너머의 세상에서 몽상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루종일 나를 짓누르는 고뇌와 고민을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곧 현실로 돌아오면, 핍박받는 도로시처럼 하루에 치여, 더위에 치여 기진맥진해버린다. 가끔은 무지개가 야속하기도 하다. 괜히 몽상하게 되어 생기는 기대감에 젖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지개를 무의식 중에 찾고, 무의식 중에 떠올리고, 무의식 중에 그 너머를 상상하는 걸 보면 그 기대감이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건 비가 아니라 무지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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