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당신은 믿어요. 잘 지내고 계세요?
저 아직도 그때가 생각나요. 당신이 세상을 떠나고 내 꿈에 나타났던 날이요. 달에 올라탄 채로 아무런 표정 없이 저를 응시했었죠. 저는 당신의 얼굴이 무척 서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꿈에서 깨자마자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어요. 그 서늘함이 어딘가 무서웠기 때문이겠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최대한 꿈에서 깨지 말 걸 그랬어요. 당신이 누군가의 꿈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래서 후회되어요. 지금의 저는 가끔 당신이 내 꿈에 나타나 주길 바라고 있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요.
달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성을 주거나 소원을 이뤄주는 자연물이죠. 저에게 달은 당신이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기 위해 탑승한 자연물이에요. 흰색 물감이 한 방울 들어간, 노란 초승달을 보면 저는 언니와 꼭 기도해요. 달을 보고 하지만 실은 당신에게 하는 기도예요. 제 기도 안에는 항상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어요. 이뤄진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올해는 변화가 지나칠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나서 감당하기 힘이 들어요. 3년 간 했던 일을 관뒀고 최근에는 단단한 끈으로 이어져 있다 믿은 사람과 어긋났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변화를 간절히 바랐는데 막상 변화를 마주하니 낯설고 벅차네요. 사실 저는 이렇게까지 큰 변화를 원한 적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저 사소하고 기쁜 변화. 그 정도만 바랐을 뿐인데, 저의 전반적인 삶 전체가 요동치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어요.
기쁜 변화도 생겼어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저의 글이 공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 일도 생겼어요. 제 글은 언제나 저 혼자 혹은 언니나 소수의 친한 친구들에게만 열람했는데, 불특정 다수가 제 글을 본다니 조금 설레기도 해요. 물론 긴장의 크기가 아직은 더 압도적이긴 해요. 저는 제가 쓰는 글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데, 그건 만족하지 못해서 그런 거겠죠. ‘왜 이것 밖에 못 썼을까’, ‘시간을 더 투자했다면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나의 사고는 왜 이리도 얕을까’하는 후회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와요. 타인의 완전한 글과 저의 서툰 글을 비교하며 울적해하기도 하고요. 다행히도 그 시간이 길진 않아요. 예전과 다르게.
가끔은 제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이 오래 전 질병으로 고초를 겪으면서 생긴 업보 같다고 자책해요. 아파서 헤매는 시간이 길었고 저는 스스로 그 시간을 버렸다고 여기기까지 해요. 다른 사람들이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미래를 촘촘하게 그릴 시기에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때 아주 긴 시간 동안 꼭 잡고 있던 꿈 하나도 포기했고요. 누군가는 포기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어요. 그 포기가 저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예전만큼 울적함에 침잠하는 시간이 길지 않더라고요. 이건 상당히 고무적이에요. 과거 일을 떠올리면 늘 후회가 동반되면서도 저의 정신이 단단해지기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답은 나오겠죠? 가끔은 속도를 내서 답을 구하는 것보다 천천히 기다리는 게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와중에 성격 급한 저는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겠지만요.
어제 엄마와 전화하면서 당신 이야기를 했어요. 전지전능한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보다 당신을 떠올리는 게 더 의지가 된다고요. 이따금 제가 불운을 피하게 되면 당신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요. 가끔 달을 보며 당신에게 기도를 한다고요. 그리고 당신이 나의 소원을 전부 이뤄주지 않아서, 내가 그걸 바라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도 했어요. 엄마도 당신에게 몇 번 의지한다고도 했어요. 참 신기하죠.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지상에서 당신과 내가, 당신과 엄마가 연을 맺은 기간은 짧은데 이렇게나 강렬할 수 있다니. 그 강렬함 때문인지 우리는 아직도 전화 통화를 하거나 얼굴을 보고 얘기할 때면 꼭 당신 이야기를 해요. 마치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이 편지를 쓴 이유도 단 한 가지, 기도하기 위해서예요.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요즘처럼 앞날이 캄캄할 때가 없어요.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누적해 온 사랑을 긁어 쓰고 있어요. 이러다가 남은 사랑을 전부 소모해 버리고 결국 내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려워요. 무언가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지 않을게요. 그저 내게 힘을 주세요. 그게 소량이어도 좋아요. 함부로 겁먹지 않을 만큼만, 사랑을 냉소적으로 보지 않을 만큼만, 소중한 사람을 지킬 만큼만. 전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게 제게는 간절해요.
있잖아요, 상화. 저는요. 당신이 내게 할 말이 없어도 날 찾아와줬으면 좋겠어요. 잠에 들기 전, 당신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눈을 감은 적이 많아요. 오늘따라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어렴풋한 형체로 나타나도 괜찮으니 날 보러 와줘요. 그렇게 해 줄 수 있어요?
이 편지를 읽었다면 우리 오늘 꼭 만나요.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도 좋아요.
이따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