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막바지의 어느 날, 놀러 온 친구와 수다로 밤을 지새우고 경복궁 근처 소바집에 갔다. 밤을 샌 탓에 충동성이 깨어났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옷장 깊숙이 숨겨뒀던 민소매를 꺼냈다. 유치원 때 이후로 처음 민소매를 입고 집을 나선 날이었다. 친구는 “너 그것만 입고 나가게?”라고 물었고, 난 멋쩍게 그렇다고 답했다. 32도의 기온에도 이상하게 덥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더위는 가짜였나, 싶을 정도로 바람이 한 올 한 올 몸을 통과하는 게 느껴졌다.
소바집에 도착해 주문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나의 신경은 훤히 드러난 팔뚝에 집중되어 있었다. 야심 차게 꺼내 입고 나온 게 무색하게, 여전히 낯설었고 조금은 부끄러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새로운 도전을 앞뒀을 때 특유의 긴장감과 공존하는 설렘이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달라진 거라곤 소매 길이였는데, 하루 내내 선풍기 바람 앞에 앉은 듯 산뜻했다. 오래전 사놓은 민소매를 입는 행위가 그렇게나 큰일처럼 다가온다는 게 우습기도 했는데, 그것마저 마냥 좋았던 하루였다.
“미안하다. 다리는 날 닮으면 안됐는데.”
소파 아래로 편히 놓인 나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볼 때마다 엄마가 장난스레 던지는 말이다. 엄마는 하체에 살이 잘 붙는 체형을 닮아버린 나를 보며 간혹 아쉽다고 내색하곤 한다. “그런 거 물려줘서 미안하다”는 말에 나는 “그래서 목발 한 번 안 짚지 않았냐”며 웃음으로 넘어가곤 했다. 물론, 팔뚝이나 다리 두께가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다. 사람의 몸을 규정짓는 건 말도 안 될뿐더러 극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농담으로 상황을 말랑하게 만드는 내가 있다면, 옷 가게에서 예쁜 옷을 추천하는 친구에게 “그런 건 마른 애들한테나 어울려.”라며 손사래를 치는 내가 존재한다. “모든 체형은 아름다워”라고 주장하는 내가 있다면, 반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 속 두 다리를 보정 어플로 깎아내는 내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리는 법을 배웠다. 여름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소매가 긴 오버핏 티셔츠, 그리고 실루엣을 가리는 헐렁하고 어두운 바지였다.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과도한 긴장으로 배가 싸르르 아팠다. 대문에 들어선 나와 포옹하고 난 뒤, 할머니는 한 걸음 물러나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곤 했다. 날카로운 눈빛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던 순간이 생경하다. 최대한 배를 집어넣고, 목을 위로 쭉 빼는 게 나름의 노하우였다. 스캔이 끝나면 “좀 빠졌네?” 또는 “좀 쪘네?” 등의 간략한 평이 내려졌다. 저녁 식사 후 할머니는 아령을 건넸고, 난 아령을 들어 올리며 저녁 내내 실내 자전거를 탔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나와 통통한 친구 몇 명, 그리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선을 그으며, “여기까지가 뚱뚱”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엄마는 “반에서 니가 제일 뚱뚱해”라며 귀엽다는 듯 볼을 꼬집었고, 명절 때 만난 고모는 “살만 빼면 진짜 인기 많을 것”이라며, 입시 전에 다이어트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 말들에도 난 흔들리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넌 특별하다는 말, 널 사랑하라는, 그런 말들이 그때의 나를 도울 수 있었을까? 인정하긴 싫지만, 몇십 년 후에도 안 잊힐 장면들이다. 반바지와 민소매를 아무 걱정 없이 입는 날은 아마 여러 해가 지나고서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움직이는 뼈, 근육, 살의 집합체…. 수많은 겹 중 숨길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교환학생 때 만난 영국인 친구와 ‘body positivity’(자기 몸 긍정주의)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읽었던 문장이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반팔 아래 드러난 팔을 가리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파란색 바람막이를 입고 다녔다. 더워도, 가려야 그날 하루 몸이 편했다. 그러곤 2학년 때 간 영국에서 다양한 체형과 옷차림을 보았다. 체격이 있어도 탱크탑을 입고, 짧은 반바지를 입는 모습이 흔했다. 댄스파티나 콘서트에선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각기 다른 춤을 췄다. 끈덕지게 자리 잡았던 수치심과 자괴감 같은 것이 증발했다. 교환 생활 동안, 빈티지 샵에서 자유롭게 멋진 옷을 입어보고 샀다. 그것들을 챙겨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따금 속으로 되뇌곤 한다. 나는 움직이는 뼈, 근육, 살의 집합체….
친구와 경복궁을 돌면서, 묘하게 기분이 좋은 상태가 지속됐다. 걸어 다닐 때 스치는 뜨거운 기운과 잠깐의 차가운 공기, 그런 것들을 피부로 느꼈다. 문득, 어깨 좀 펴고 걸으라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 가슴을 펴 얇은 섬유 새로 스며드는 바람을 받아들였다. 큰 덩치를 숨기려 잔뜩 말고 다녔던 어깨를 몇 바퀴 돌려 원래 자리에 위치시켰다. 그날 난, 평소보다 더 활동적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흥얼거렸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나를 만난 기분이었다.
훤히 드러난 팔뚝이 편해지는 중이다. 그날의 기억으로 이번 여름은 유독 여름다웠다. 가려뒀던 몸과 마음에 계절의 온도가 들어서니 조금 더 편한 일상이 되었다.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웃어도 좋다. 이 글은 웃으라고 쓴 글이다) 난 민소매를 꺼내입은 순간부터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의 신경은 드러난 다리나 팔뚝이 아닌, 지나는 차들과 색색의 나뭇잎에 가닿는다. 몸에 잠식되지 않을 때, 어울리지 않아도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때 진실로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옷 한 벌 꺼내입었다고 인생이 달라지진 않는다. 여전히 내 몸에 자신이 없을 때가 많고, 짧은 소매 아래로 보이는 날씬한 팔뚝을 보면 내 것을 가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올 때도 많다. 그래도, 잊지 못할 그때의 공기 덕에, 앞으로 여름엔 어쩔 수 없이 민소매를 자주 입게 될 것 같다. 그날, 친구가 오래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 속 제대로 그을린 팔뚝에, 이를 보이며 웃는 모습이 꽤 멋지다. 사소한 용기에서 우러나는 해방의 색채를 알아가는 중이다. 민소매든 무엇이든, 당신 옷장 구석에 숨겨뒀던 무언가를 꺼내는 여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