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샷처럼 유연하고 가볍게!

by 아트인사이트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카페가 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10분 정도 바짝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가게다. 처음엔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다. 단정하면서도 포근한 실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친절한 사장님이 좋았고, 테이크아웃해 간 커피 맛이 괜찮아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방문을 기약한 곳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미리 커피를 사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차 안에서 바로 따끈따끈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 카페가 떠올랐다. 가게를 빠삭하게 꿰고 있는 단골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던 상태라 선뜻 걸음하게 되었다.


오픈 시간을 살짝 넘겨 도착한 나는 카페의 첫 손님인 듯했다.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가져갈게요.”하고 주문했다. 별생각 없이 커피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훅 들어온 사장님의 말. “저희 집은 기본 2샷 들어가요.”


‘2샷? 아침에 2샷이면 진하려나? 기본이면 그냥 그런가?’ 한 번도 커피 샷을 가지고 고민해 본 적 없던 나는 감이 잘 안 와서 “한 잔은 그대로 주시고요, 한 잔은 샷 하나로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렸다. 뭔가 주춤하는 내 표정을 읽은 것처럼 사장님은 아래와 같은 제안을 해주셨다.


두 잔 다 1.5샷으로 해 드릴까요?


1과 2에서 고민할 때 새롭게 등장한 ‘0.5’는 너무나 혁명적인 선택지였다. 똑 떨어지는 사장님의 명쾌한 제안에 ”좋아요!“만 세 번을 외쳤다. 게다가 건네받은 커피 캐리어에는 뭐가 많았다. 쿠키 과자와 스틱 슈가가 각각 2개씩이나 꽂혀 있어서 감동했다. ”가다가 넘칠까 봐 랩 붙여 놨어요. 떼고 드셔요.“라는 세심한 배려에 또 한 번 감동하면서 속으로 단골을 확정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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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샷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커피는 적당히 기분 좋게 씁쓸했다. 꿀떡꿀떡 몇 모금 마시는데 문득 이런 종류의 유연함이 반가웠다. 기다려 온 것처럼 달갑게 다가왔다. 원래 사람은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바로 알아챈다고 하지 않나. 뭐든 분명한 게 좋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강경 ‘A or B’ 스타일인 나는 지금 이 반샷이 정말 고팠던 것 같다.


매사 강경하면 어느 순간 툭 하고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거기에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일에도 시작했으면 끝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이상한 완벽주의까지 작용해서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적이 많다. 그 뻣뻣함이 날 괴롭힐 때가 많다는 걸, 그래서 다른 가능성조차 열어 보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인정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늘이 두 쪽 날 리 없다. 답은 A와 B 밖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단번에 유연해지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에 말랑말랑한 선택을 끼워 넣고 싶다.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직하게 밀어붙이기다. 특기를 살려 이번 일에 ‘반샷 매직’이라는 이름을 짓고 우기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짓고 우기려 한다. 0.5샷의 마법을 일상으로 끌고 와 야금야금 적용시켜 본다. 얼마 전에 작은 프로젝트 하나를 마침으로써 한 싸이클을 경험했다. 작업을 마친 후에 들었던 생각은 이 일을 바로 이어서 하느냐 마느냐였다. 어김없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면 탈이 날 것 같았다. 이미 아이디어가 고갈이 난 상태였기에 재정비 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잔보다는 더 쓰고, 두 잔보다는 덜 쓰게 만드는 0.5샷의 유연함을 여기에 써먹는다. 곧바로 일정 조율에 들어간 나는 남은 달을 잘 준비해서 3월에 다시 작업물을 이어 가기로 했다. ‘반샷 매직’이 먹혔다. 평소 선택지의 밖에서 답을 구한 나는 조금 더 유연한 선택을 한 것에 시원한 쾌감을 느끼고 있다.


충분히 그렇게 해도 됐었던 일들. 그러지 못해서 꺾였던 날들. 지나간 걸 후회해 봤자 소용없겠지만 바보 같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뜬금없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올해에는 내게 유연함이 좀 더 스며들기를 바란다. 고대하던 여러 선택지 앞에서 무엇을 고를지 몰라 행복의 비명을 지르는 그런 모습도 상상해 본다. 단호하고 우직한 나와 말랑해지고 싶은 나 사이에서 애 좀 먹을 거다. 반샷의 효험이 그 간극을 좁혀주길!


세 번째 카페 방문도 조만간이다. 1.5샷이 아주 딱이었다고 사장님에게 전하고 싶다. 훗날 좋은 일이 생기면 주책맞지만 이 글을 보여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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