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대구 원대동, 배추장사 트럭들이 흘리고 간 배추를 주워다 배춧국 끓이던 시절이 있었다. 응팔에 나오는 반지하집이 딱 우리 집 배경 같아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많이 정겹고
엄마 살아있던 시절 두부반찬 콩나물 반찬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싶어
그 시절 돈은 없었지만 꿈이 있었고 참 따스하고 행복했었다 싶다.
엄마가 23살에 돌아가셨으니까!
그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살면서 텔레비전에나 나올법한 그런 아픔이 우리 집에도 오는 건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도대체 그럼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되어가는걸까 싶었다.
또 엄마 돌아가시기 전엔 나는 딸 딸 아들 집 둘째 딸 천덕꾸러기 둘째에, 재능 있고 미모를 타고난 언니 밑에서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한 채 귀한 귀둥이 아들이 태어나 중간에서 존재감은커녕 맘속에 열등감과 응어리가 가득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냥 한마디로 기죽고... 뭔가 자존감도 없고 나는 뭔가 싶고 그냥 밥상머리 숟가락 올려주면 고맙게 밥 먹고 다니는 걸로 만족하는 그런 시절의 아이였다.
그래 유독 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고, 내가 좀 밉생이였는지, 눈치가 없었는지, 사랑스럽지 못한 아이였는지 유독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이가 좋지도 못했다.
나도, 별로, 그 방면에서 개선하려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원래 둘째는 그런가보다 하고, 열심히 사는 법만 연구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지점에서 나의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막내둥이는 내 눈에 하트였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였다
훗날 우리 막내둥이가 17살에 엄마가 돌아가셔야 할 운명에 쳐해 질 줄은 아무도 몰랐을 텐데, 두고두고 그거 가슴 아팠고 미안했고, 본인도 왜 고등학교 때 휴학하고 엄마 아플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나를 마음 아파해서 한동안 우울해하고 방황했던 적 있다.
다행히 색시 잘 만나서 경찰시험도 합격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얼마나 이쁘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정말 행복한 아이다 그리고 재능 있고 남달리 특출 났던 우리 언니도 화려하게 멋지게 잘 살고 있다.
청년시절,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북경으로 다시 서울로 아시아를 다니던 에너지를 가지고 남편을 뒷바라지해가며 뒤돌아보니 내가 어느새 45세가 되어있었다. 내 형제들은 정말 잘 살고 있었고 나는 조금 부족한가? 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서, 새삼 귀에 들어오는 책들 ‘내가 곧 풍요다’ ‘해빙’ 그 말, 즉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해야지 없는 것에 집중하면 자꾸 없어진다는 그 말을 나는 많이 듣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깊이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재능이 있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모두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에 집중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야 더 가지게 된다는 원리가 해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양철학, 불교철학, 법화경, 등에도 있었는데, 듣고 있었으면서도 지금 이렇게 와 닿는 이유는 살면서 그것을 몸으로 경험하는 체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재능도 열성도 있었지만 뭔가 늘 나 자신이 아쉽다고 생각해보니 그것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곧 보탑이다! 내가 소중해! 내가 곧바로 그것이다라는 소중함에 대한 자각, 긍정에 대한 자각이었다.
엄마가 없다고, 집에 돈이 없다고, 나는 미모가 없다고, 나는 너무 없다는 것에 의기소침했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고, Stay hungry Stay foolish 정신으로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또 Having이 유행하고 보니 그 말도 맞고 이 말도 맞는 것 같다. 어쩌면 식자들은 같은 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절히 바라되 다소 긍정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있는 것 풍요에 집중해보라는 말은, 불교계에서 하는 말인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하고 불성을 자각하고 상대방의 불성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그 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