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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자대자~건축가와의 대화

시인 이상도 건축가였다!

by 손큐

건물에 대해 유심히 보게된다!

미술관 건축은 무엇보다 관람자 중심이어야 하며, 자연을 품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예를들어 1982년 국제갤러리 건축 당시, 이우환 작가의 ‘조응’ 작품을 공간에 녹여내기 위해 자연과 감상자가 중심이 되는 전시장을 구현했다. 당시 건축은 단순한 기능주의 양식이 아닌, 비스듬히 설계한 ‘건물 벽에 튀어나온 예술 작품’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 참고로 국제갤러리는 한국 최초로 프리즈, 아트바젤 등 글로벌 아트페어에 진출한 화랑이며, 이우환(1936~)은 부산시립미술관에 별도 공간이 마련될 만큼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미술관 건축은 무의미한 형태가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 건축이어야 한다.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염치·부끄러움·절제·배려·겸손과 같은 가치가 함축된 철학적 상징이어야 하며, 이에 따른 방향 설정이 필수적이다.


2025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기후위기 시대의 건축’은 미술관 건립에 참고할 중요한 키워드다. 시대를 예견하고 인간 중심의 메시지를 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건축가의 멘토가 시인 이상이었는데 시인이자 철학가이자 건축가~!모두 연결고리가 있다. 두둥~ 울림이 있었던 만남이었고, 나는 이상 시인은 모르지만 그에게 영향받은 철학가이자 건축가는 알고 있다. 건축대표인 셈인데 그분의 멘토가 이상! 시인이었다.


이상에 대해 알아보자! 본명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근대기 조선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자, 건축가였다.
18세에 조선총독부 건축과의 고등기수로 임명되며 엘리트 기술 관료의 길을 걸었고, 실제로 경성 시내의 도시계획, 건축 설계, 감리 업무에 직접 참여했다.
그가 졸업한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의 근대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실무 인재 양성 기관이었고, 이상은 그곳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건축 기술자의 삶이 아니었다.
건축이라는 논리적이고 계산된 구조 안에서 그는 점차 그 세계의 공허함을 느꼈고, 오히려 그 안에서 언어와 존재의 균열을 발견해갔다.
그가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상(箱)’은 상자, 혹은 서랍을 뜻하는 말로, 세상과 자신 사이의 막힌 감각, 열리지 않는 구조를 상징한다.
그의 첫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제목부터가 그러한 존재 인식의 비유다.
육면체라는 공간 구조 안에 인간 존재의 부유함, 불안정성, 그리고 무한 반복의 감정을 집어넣었다.
단어들은 문장처럼 나열되지 않고, 수학 기호처럼 튀어나오고, 공간처럼 분할된다.
이것은 분명 건축 설계도에서 시작된 언어 실험이었다.

이상이 남긴 작품들은 전통적인 문학의 문법을 거의 따르지 않는다.
그의 시는 종종 파편화된 이미지와 수학적 배열로 구성되고, 그의 소설은 이야기보다 구조와 감각의 전이가 중심을 이룬다.
1934년 발표한 연작시 「오감도(烏瞰圖)」는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동안 독자들의 이해를 전혀 얻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 그는 조감도라는 시각적 구성을 빌려 파편화된 감각의 시대를 묘사하고 있었다.
그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바꾸려 했다.
문장보다는 장면, 설명보다는 감각, 연속보다는 단절이 그의 문학을 이끌었다.

이상의 문학은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 현실에서의 심리적 붕괴, 존재의 균열, 그리고 극도로 예민한 감각의 발현으로 읽힌다.
그는 고독했고 병들어 있었으며, 끊임없이 경계 위를 걷는 삶을 살았다.
그의 대표 소설 「날개」는 그런 그의 내면을 거의 고백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는 마지막 문장은 단지 허무의 표현이 아니라, 탈출을 꿈꾸는 존재의 절규에 가깝다.

이상은 1937년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도쿄에서 병을 얻어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죽음은 마치 예견된 결말처럼 느껴질 만큼 생애 전체가 치열하고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이후 한국 현대문학과 시각예술, 건축과 언어 실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의 시인들, 건축가들, 그리고 복합장르의 예술가들이 이상을 다시 호출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단순한 모더니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삶과 언어, 건축과 존재, 그리고 감각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던 존재였다.




나의 건축 철학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초점이 있다.

건축이 자연의 일부로 존재해야 하며, 자연을 억지로 지배하려 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자연의 그대로 둠(void처럼, 그러나 존재함)’이라는 개념, 전통 한옥의 정신과 현대 건축 언어를 결합한 사례들이 많은데 살펴보면, 외부 노출 콘크리트와 온돌 마루, 비움과 채움의 공간 배열을 통해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도시, 기술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건축가들은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도 초청 받는다 2025년 나도~ 가고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것 같다. 물리적 구조를 넘어 ‘기억과 감각을 함께 설계하는 건축’을 지향하며, 건축가뿐 아니라 사용자, 자연, 시간 모두를 포함한 ‘관계의 디자인’을 구현하는 자들!~


요즘 한국에서 영웅처럼 떠받들어지는 외국 건축가들 리처드마이어, 안도타다오....그리고 지금 유명세 타고 있는 한국 건축가들이 있긴한데~~. 나도 시야를 더 넓혀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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