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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r 13. 2022

나의 전화친구, 꽃할매

원조 짝꿍이 외할머니라는 사실은 변함없음을 증명하다

전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전화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 전화보다 문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문자보다 전화가 빠르고 전달하기 편리해서 자주 애용한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나는 경우는 달랐다. 굳이 꾹꾹 손가락에 힘을 주며 한 자 한 자 찍어 써야 하고, 때론 할 말이 많아 주저 없이 써진 글이 혹여나 전달이 안될까 봐 다시 읽어보거나 문단을 나눠가며 시간과 공을 들여보내곤 한다. 가끔씩 짧은 문자가 못내 아쉬워 긴 글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건 아무래도 반사신경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곧잘 당황하는 바람에 전화를 오래 이어가는 게 어려운 편이랄까.


이런 내가 조금 달라졌다. 연애할 때도 이런 나를 배려해, 통화하는 걸 좋아하는 신랑은 문자를 즐겨 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금씩 달라진 것 같지만, 결혼과 동시에 타지로 이사를 가게 된 바람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나는 핸드폰과 가까워졌다. 한 번은 핸드폰이 갑자기 안 되는 바람에 애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핸드폰의 중요성을 가장 실감했었다.


전화하는 걸 두려워하는 편인 내가 유독 가장 편하게, 가장 많이, 가장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외할머니다. 꽃을 좋아하시고 오래 시간 동안 많이 키워오셨던 터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꽃할매라고 불러드린 적이 있었는데, 맘에 들어하시는 눈치라 그때부터 꽃할매라고 불러드렸었다. 그때부터 외할머니를 부르는 나의 애칭이 '꽃할매'가 됐다. 


꽃할매는 나의 전화 친구이다. 어쩌면 결혼 전부터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온 원조 짝꿍으로 볼 수 있는 그녀가 혼자가 됐다. 홀로 지내고 있는 할머니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 나처럼 그녀도 나와 함께할 때는 못 느꼈던 불안감과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부러 결혼하면서도 내 물건의 일부를 집에 남겨뒀었다. 내가 잠시 출장 갔거나 여행 갔다고 느끼도록. 그러면 갑작스러운 외로움이 덜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편으론 기계치나 마찬가지인 할머니에겐 척척 해결해주는 똑똑한 손녀가 곁에 있어 누릴 수 있었던 편리함을 이제부터 누리지 못하고서 답답해 여겨야 하는 게 고충이 되게 하는 것 같달까... 처음부터 느끼셨던 라면 조금 덜 불편하시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할머니가 걱정스러워 아침, 저녁으론 매일 전화드렸었다. 가끔 저녁 데이트나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조심스럽고 곤란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건강을 이렇게라도 챙기는 게 감사하기 때문에 작은 수고로움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전화를 걸면 매우 반갑게 전화를 받으셨고, 수화기 너머로 씩씩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점점 작고 힘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부턴가 변화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30분 이상의 통화도 즐겁게 하셨었는데, 언제부턴가 일찍 잠든다거나 빨리 마무리 멘트를 하시기 시작했다. 이모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내가 하는 말이 잔소리 같아 오래 듣는 게 힘들었달까. 전화 도중에 갑자기 끊기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전화가 짧게 매우 자주 수시로 걸려오기도 했다.  


흔치 않지만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한 번은 전화 진동 로이 노제 같은 걸 느낀 적이 있다. 그래서 빨리 전화를 받으면서도 퉁명스럽게 "왜요?"라는 말을 한 적이 종종 있다. 친한 친구한테 대하듯이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그게 얼마나 상대에게 아쉬운 말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얼마 전 급한 일로 누군가에게 연락했다가 들었던 그 말이 얼마나 냉담하고 매섭던지... 좀 더 상냥하자고, 또 그렇게 다짐해봤다. 


예전에 비해 달라지는 할머니가 걱정되니까. 가끔 관심을 위한 의도된 행동인 건지, 아니면 진짜 까먹은 건지 모르겠지만... 날짜나 시간에 대한 개념이 상실되고 있었다. 원래 없었는데 내가 늘 알려드려서 인지하셨던가? 그런 생각까지도 하게 됐달까. 


"너무 그러지 마라, 돌아서면 까먹는 나이인데..."


혹여나 할머니가 치매 증상일까 봐 덜컥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그치고 내세우며 꺼낸 말은 할머니가 정신을 챙기셨으면 하는 마음이 큰 만큼 큰소리를 내게 한 것 같다. 그걸 할머니는 피하고 싶었으리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쨍쨍한 그 소리가 누군들 듣고 싶을까. 무섭고 겁이 나서,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향해 큰 잘못도 없고 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 뉴스 사건사고, 티브이 드라마 등등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해주셨었는데 할머니가 달라진 걸 느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걸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이모를 통해 확인받게 되었다. 정신의학과에 할머니를 모셔가셨다는데... 불면증을 앓은 지 꽤 되셨다고 한다. 나와 함께 살 적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기에 매우 당황스러웠었다. 평소에도 불안하다는 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행히 처방받은 약이 그나마 도움이 되셨는지 어느 정도 잠은 주무시는 편이나 여전히 배탈과 변비로 고생 중이시고 가끔씩 불거지는 사태들로 전화 진동벨이 잊힐 적마다 울려주는 편이지만, 오히려 전화기가 잠잠할 적엔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한 때는 전화기를 두고 밖에 다녀올 적에는 내게 미리 알려주고 다녀오실 때도 있었는데... 무척 뭉클했달까. 내가 걱정할까 봐 미리 생각하고 염두하고서 연락해주시는 그 마음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모른다. 마치 밖에 나간 아이 연락을 기다리는 엄마와 같은 마음이었달까. 가끔 '내가 연락하는 게 귀찮지 않으실까?' 그런 걱정도 했던 터라 귀찮기보다 원격 보호자로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서 기뻤다. 


옆에 있을 때처럼 소소하게 챙겨봐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도와드릴 수 없어서, 외로울 때 옆에 얼굴 보며 이야기할 수 없어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실 때 달려갈 수 없어서, 뭔가 해드릴 수 있는 게 크게 없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전화였다. 길게 통화하는 것도 청각이나 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기에, 지금 이렇게 짧게 건강상태를 여쭤보며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문자가 남기는 여운만큼은 아니겠지만 전화하는 동안은 수화기 너머로 떠오르는 상황과 그곳에 있을 할머니를 바로 찾아갈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라고 여긴다. 


나의 가장 친한 전화 친구 꽃할머니가 오래오래 지금처럼 전화를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한다 해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도 그게 얼마나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것인지를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나와 통화해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꽃할머니, 내일도 잘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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