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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y 22. 2023

할머니의 보금자리가 없어지는 게 슬픈만큼 화가 납니다


저녁 무렵 부모님과 갑작스럽게 전화통화를 나눴어요. 할머니가 안 계시는 동안... 저와 이모에겐 참 많은 변화와 시련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큰 것 같아요.


할머니가 곁에 계실 때는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여백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 jaehunpark, 출처 Unsplash



짐을 정리하다 발견했던 봉투의 글을 읽으면서 할머니가 숨겨둔 판도라의 상자를 발견했고... 아주 조금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늘 제 편에서 맞서 싸우고서 곁에 머물러 지켜주던 당신의 그늘이 그립습니다.


성가실 정도로 끊임없이 시시콜콜 늘어놓던 잔소리들이 무척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모든 소리와 눈빛, 손짓 그 자체를 모두 사랑스럽게 여겼어야 했음을 지금은 알았습니다. 영화 '이터널선샤인'처럼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신에게 미안한 이 감정이 조금이라도 작아질까요?


© liamtruong, 출처 Unsplash

요즘은 일상 속에서 당신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걸 연습하는 중입니다. 이전부터 오히려 당신보다 기억력이 안 좋은 제가 유일하게 당신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이것뿐이라고, 당신과의 추억을 오롯이 감정과 마음과 사실을 모두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 그걸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여태껏 '이미 늦었는데, 내가 하겠어?, 나는 해당사항이 없어.' 뭐 이런 생각으로 엄두도 못 냈던 일들이 있습니다. 그걸 지금 작게나마 하나라도 해보자고 이렇게 아등바등해봅니다. 이게 얼마나 갈지, 제대로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 rhindaxu, 출처 Unsplash

당신을 위한 제 마음이 이토록 깊은지 이제야 알아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깊음 속에 스스로가 빠질까 봐 두렵기도 하고 당신의 존재를 사무치게 그리울 순간이 다가올수록 그리움의 농도가 점점 선명해질까 봐 우려가 됩니다. 어쩌면 저는 저 자신보다 당신을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의 표정과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나를 생각하고 배려해서 했던 건지를 알게 될수록 그 마음을 싱겁게 대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더 많이 속상하고 미안하고 무겁습니다. 그래서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더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 yoksel, 출처 Unsplash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꽃도, 좋아했던 음식도, 좋아하던 노래도... 하고 싶어 했던 목욕과 가고 싶어 했던 시장 모두 함께 하고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애간장을 태웁니다.


이미 손상된 일부의 뇌를 가지고 있지만 금세 병마와 잘 싸워내고 툴툴 털고 일어나 "이제 집에 가자~" 이런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지금껏 못 해 드린 걸 다 해드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제게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실 수는 없을까요? 할머니?

© maybejensen, 출처 Unsplash

당신과 나의 추억이 서린 보금자리는 이제 빈집으로 바꿔야 할 테고, 다시는 그때 그 시절처럼 그곳에서 우리가 보냈던 시간을 되돌려 생활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당신과의 추억이 아직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할머니의 움직임이 계속 보이고 이야기가 들리곤 합니다.


집안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던 할머니의 모습 다시 보고 싶습니다 아주 많이요 그리움의 크기를 셀 수 없어 눈물이 대신하는 것인지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하염없이 마중을 나가네요. 언제쯤이면 담담하게 이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될까요?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티브이와 인터넷을 정리하려는 부모님이 괜히 괘씸게 느껴졌습니다.

© szolkin, 출처 Unsplash

일을 핑계로 티브이볼 적에도 노트북을 하던 제가 일보다... 드라마를 같이 보는 순간의 울고 웃는 공감에 메말랐던 당신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했음을 이제야 후회합니다.


할머니가 없는 빈 집에 티브이도 인터넷도 소용없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이걸 정리하게 되면 다시는 못 돌아갈 것 같고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될까 봐. 버티고 버티는 내 모습을 스스로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되려 부모님께 언성도 높이고 대화도중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는데... 이런 마음을 이해하는 건지 웬일로 아버지는 별말 없이 다 들어주시기만 합디다.

© harlimarten, 출처 Unsplash

할머니는 늘 제게 아버지 말을 잘 들어라셨죠.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라며... 아마 지금 제 얘기를 들으시면 저를 혼냈을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평소 제가 할머니 편보다 남 편을 들어 서운하셨을 테니 기뻐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여러 번 생각할 정도로 신중한 할머니의 성향을 삼십 대가 돼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할머니는 변덕쟁이면모를 가진 사람으로 생각해 왔는데... 결혼하고 나서야 왜 제게 그렇게 시켰는지, 왜 서운해했던 건지, 왜 그렇게 아침잠을 자게 뒀는지, 왜 당신이 모든 걸 해내려 애써왔는지 모두 알게 됐습니다.


저, 이제야 조금 철든 것 같죠? 할머니... 항상 당신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온전한 당신의 편이 되기엔 너무 늦은 걸까요?


할머니... 제가 비록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켜내진 못하겠지만. 다만 할머니가 돌아올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물건을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놓을 겁니다. 그러니까 기운이 없으시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악화되지 않도록, 마음근육도 몸근육도 모두 튼튼하게 잘 견뎌내 봅시다!!! 나의 사랑하는 꽃할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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