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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y 22. 2023

애지중지 길러주신 꽃, 할머니처럼 아프네요.


할머니 저는 오늘, 할머니가 주신 라니를 보내줬습니다... 식물이 물만 주면 잘 클 거라 생각했는데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예쁘게 잘 키워 보내셨는데 결국 아프게 만든 것 같아 아프고 죄송스럽네요.


하얀 꽃을 피우는 봄날

작년 10월경 할머니의 성화로 저희 집에 가져오게 된 녀석, 나비란. 라니!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며 예뻐했습니다. 


올해 봄 2월부터 한 달 남짓 앙증맞은 하얀 꽃을 피우고 졌다 하며 달맞이꽃이 연상됐던 터라 신기했었지요. 꽃만 피면 좋다고만 생각했지만 그걸 보기까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기에 자주 보면서 잎이 말라가면 물도 주고 영양제도 투여하며 빛도 골고루 주려 노력했습니다.


자꾸만 잎이 말라 가요.

메마른 몸에서 자꾸 뻗어가는 줄기. 생겨나는 잎새. 그리고 꽃이 여럿 생길수록 그만해도 된다며... 그랬건만. 결국은 이 사달이 나네요. 1~2주 전부터 잎이 말라가길래 물을 3~2일에 한 번씩 주게 됐고. 

공기가 부족하다 싶어 얼마 전에 베란다에 냈는데 이틀 지난 어제 물받이칸을 보니 톡톡이라 불리는 벌레가 대여섯 마리가 보이고... 더 자세히 살펴보니 이파리와 줄기에는 하얗고 쪼그마한 진딧물인지 애벌레인지 모를 물체들이 자꾸 움직이길래 기겁초풍했습니다.


할머니도 아시죠? 저, 벌레 무서워하는 거...


그 난리 부르스를 하루종일 치다 결국 방출시키게 됐습니다.


사실 지금도 주문해 둔 식물살충제 두 개가 배송 중이라 마음이 무겁고, 베란다 화단에 두고 온 게 미안하지만, 어제저녁 갑작스러운 이별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뻔한 상황까지 갔으나 이에 비하면 생존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꽃필 때만 좋다고 사진 찍고 버리는 인간으로 기억하진 않을지 미안하지만... 의사도 아니고 벌레까지 포용할 정도로 마음 넓은 인간도 아닌 데다가 본인조차 버거운 인간이라... 생명체를 거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 않나 싶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건 없다. 그건 식물도 사람도 마찬가지. 어떤 이유에서든 아프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병과 싸우기 위해 더 큰 에너지와 시간, 돈을 써야 한다.

#나비란 #톡톡이 #식물사랑 #할머니 #식집사 #꽃할매병동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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