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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an 03. 2024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무렵이면 김장준비

이맘때 할머니와 걱정하던 건 김장준비. 햇 고춧가루를 구입하고, 마늘을 열심히 까서 방앗간 가져가서 갈아놓고, 이모에게 강원도 배추구입을 전담하고, 김장김치에 들어갈 속 재료들을 알뜰살뜰 부지런히 사다 모으시던 할머니. 

 할머니의 아무도 모를 노고를 저는 어깨너머로 봤습니다. 비록 할머니께 배우지 못한 손맛과 비법... 좋지 못한 기억력이 문제인 건지, 아님 그땐 이토록 그리워할 줄 몰랐던 건지, 그게 아니라면 할머니의 병세로 인해 할머니와의 추억이 그게 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안일함 때문인지...

 저도 제 자신을 미워하거나 자꾸 이렇게 후회하고 속상해하고 싶진 않지만 저도 모르게... 탓할 수 있는 게 제 자신밖에 없네요. 세상을 탓할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진작에 할머니의 전조증상을 알아차리고서 치료를 받게 했다거나, 심지어 사고 당일 날 3시간만 빠르게 센터장님이 아닌 119를 불러 현관문을 뜯어내고 할머니를 구출했더라면 좀 더 빠르게 호전된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희망과 자신감으로 가득했을지도 모르죠... 

  가을바람이 불어옵니다. 액젓 하나도 좋은 거, 고춧가루도 최상급, 굴젓도 넣어야 한다며 매사에 신중하고 열심히셨던 나의 할머니... 그땐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그렇게 챙기는 건지...? ' 맛에서 그다지 차이도 안 날텐데 라며 돈이 많이 드는 정성을 얕봤습니다. 아니, 같이 애쓰는 것 같아 되려 귀찮게 여겼던 것 같아요. 

한 5년 전부터 아니 불과 3, 4년부터 할머니와 함께하던 김장... 장 만드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죠.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부질없어 보였던 할머니의 정성에 온 마음을 다해 도울 겁니다. 부질없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작지만 손 많이 가는 일들을 도맡아 해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뭣모르고서 12개월동안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거겠지요... 그게 바로 가족을 위해 해먹이려는 할머니의 사랑이자 마음이자 배려였을테니 말이에요. 

보쌈김치 해먹었던 아주 어릴 적의 그 날이 떠오르는 밤이네요. 할머니 보고싶습니다. 이젠 제법 쌀쌀해요 할머니, 감기조심하시고 건강하셔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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