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나와 시술실에서 시간을 공유한 분은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다. 지금은 사무직에 근무 중이고 남자 친구는 11살 연상에 현재 바(bar)를 운영 중이다. 둘이 만난 지는 2년이 넘었다. 내가 좋아라 하는 젊은이 커플이다.
나이차도 많고 남친이 바를 운영 중이라니 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많을 것 같았다. 전투 육아 외에는 일상이 고요한 감성노인 아주미는 일단 11살 나이차의 커플이라 하니 그 시작이 궁금했다.
"남자친구랑은 소개팅으로 만나신 거예요?"
감성노인이 초롱초롱하게 물었다.
"아니요, 소개팅은 아니었고... 그냥 소개로 만났어요."
노인이 생각해야 할 것이 생겨 잠시 고요해졌다.
소개팅은 아닌데 소개로 만났다는 건 무슨 말일까... 3초간 혼란스러웠다.
"아.. 소개로 만난 게 소개팅 아닌가요?" 다시 되물었다.
"뭐 그렇긴 하죠. 하하"
다행히 이십 대 여성은 호탕했다.
노인이 진심으로 몰라서 궁금함을 가득 안고 계속 물어보니 요즘은 소개팅이란 말은 잘 안 쓴단다.
대신 "남소 받을래?" "남소 할래?" 이 정도의 대화가 오간 후 소개를 받는다고 했다.
남소???? 여소????? 진심으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이런 격세지감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을 줄이야. 다시 한번 노인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제야 찾아보니 거의 10년 전부터 써오던 말이었다. (네이버는 모르는게 없다.) 내가 결혼한 지 올해로 10년 차인데 어찌나 정직한 삶을 살아왔는지 새삼 느껴졌다.(?)
10년 전부터 쓰던 단어를 모르는 내가 그 이십 대는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이런 사람과 계속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남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 시술실 안에서 본인을 맡기는 게 맞는지 여부가 의심스러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10년 만에 처음 알게 된 단어이다 보니 너무 써보고 싶은데 어디 쓸 일이 없다. 매일 나와 시도 때도 없이 카톡 하는 사람은 오로지 남편뿐인데 난데없이 남편에게 "여소 받을래?"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정말 예전에 이미 유행 다 지난 "~했삼." 말투로 뒤늦게 자식들과 소통하는 어느 엄마의 카톡을 어딘가에서 보고 너무 웃겼던 기억이 있는데 이거 좀 있으면 '귀여운 우리 엄마'라는 제목으로 나와 내 딸 사이 카톡이 돌아다닐 날이 머지않은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비록 감성 노인이지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계속해서 분발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 11년 나이차의 연애를 하고 있던 이십 대 여성은 나에게 '남소'라는 단어 외에는 그다지 신선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하는 것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다행히 아직까진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 요즘은 '헐'도 안 쓴단다. 진료실을 찾았던 또 다른 나의 20대 스승은 나에게 '헐, 완전 대박' 하면 아재 3단 콤보라고도 친절하게 알려줬다. 이 글을 혹시나 젊은이들이 보고 있다면 이런 걸 글로 쓰고 앉아있다니 이 아주미 진짜 노인이네 할 수 있지만 나는 어제도 "헐, 완전 대박"을 입 밖으로 꺼낸 것 같다.
아재 3단 콤보라고 분명히 알려줬음에도 입에서 떨어지질 않으니 그냥 노인은 노인답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