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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14. 2022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_차분한 국어 선생님


차분한 국어 선생님


  이날의 만남은 학원에서 고등학교 국어를 15년째 가르치고 있는 3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아버지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공교롭게 아버지와 같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해당 학교 국문과 교수님들이 아버지 친구분들이 많아 왠지 불편해 처음부터 국문과는 지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은 철학을 전공했고 국어교육을 부전공했다. 

철학 전공이었다는 말에 "와우.. 철학이요..???" 바로 눈이 땡그래 졌다. 심지어 공부해보니 철학이 본인과 잘 맞았고 재미있었단다. 

'언빌리버블..' 


갑자기 새털처럼 가벼운 나와는 다른 묵직함과 진중함을 갖춘 사람처럼 보인다. 어쩐지 다시 생각해 보니 진료실에서 첫 대화의 시작에서부터 그 말투에 차분함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한 사람임이 느껴졌던 것 같다. 심지어 현재 고양이 1, 개 1과 함께 사는 1인 가구로 앞으로도 결혼에는 생각이 없단다. 너무나 전형적인 철학적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단 학교가 아닌 학원의 국어 선생님이라기에 어딘지 모르게 생소한 점이 있었는데 일단 고등학교 국어라는 교과를 학원에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였다.  내가 요즘 기억력이 당최 예전 같지 않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등학교 때 국어학원을 다닌 기억은 없다. 원래도 학원을 많이 안 다니기도 했었지만 필요한 과목은 거의 인강을 이용했는데 그것도 수능을 위한 사탐, 과탐 정도였고 언어를 수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신 준비를 위한 국어 공부라면 당연히 학교 수업시간에 잘 듣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었나? 선생님이 무려 중간중간 중요하다며 시험에 내겠다 작정한 부분을 집어 주시기까지 하는데..? 그래서 필기 잘하는 학생의 책을 빌려서 베껴 쓰는 게 보통 시험 준비 첫 과정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갑자기 라때 노인 같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내 내신성적이 그 정도밖에 안됬던 건가? 나 몰래 친구들은 모두 다니고 있었던 건가??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런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긴 하다. 


현재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분에게 묻기엔 조금, 아니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나지막이 물었다.


"그런데.. 국어를 학원에 다녀야 하나요..?"


"요즘 비문학이 예전보다 많이 어려워지긴 했거든요."


아.. 비문학이 어려워졌다니 그래, 어려운 주제의 비문학이라면 어렵지 그래 그래, 학생들이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납득은 되지 않는다. 비문학이 어려워졌다 한들 학원을 다니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는 않았는데 철학을 좋아하는 차분한 국어 선생님은 친절하게 추가 답변을 해 주었다.


"워낙 요즘 아이들이 글을 안 읽어서 학원에서라도 읽히는 게 나을 수 있고 생각보다 기본적인 어휘를 몰라서 하나씩 짚어주는 게 도움이 되기는 해요. 학교에서는 하나하나 상세하게 짚어주지는 못하니까요. 점점 더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거죠. 갈수록 아이들 언어 수준이 떨어지는걸 정말 많이 느껴요."


아직 우리 집 아이들은 9살, 4살인데 뭔가 앞으로의 교육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론 나라고 국어성적과 공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전혀 아니었지만 점점 더 학원에 의지하려는 요즘 아이들의 분위기가 안타깝긴 했다. 


 최근 본인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한 명은 '성수기'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고등학생 어휘력 수준이 심각하며 지문 첫 줄에 답이 있는데 제대로 읽지 않아 문제를 틀리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 정도면 활자를 읽으려는 의지 자체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차분한 그녀는 잠시간 아주 아주 조금 흥분했다.


또한 놀라운 점은 무언가 정보가 필요할 때 네이버나 구글 검색을 하는 우리네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가장 먼저 유튜브로 검색해서 영상으로 정보 습득을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세대가 아닐 수 없다. (그들도 이 아주미 세대가 신기하겠지만)


그녀는 15년 경력이지만 앞으로도 본인 소유의 학원에서 원장이 될 생각은 전혀 없고 지금의 위치를 유지한 채 50세 전까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15년이나 지속할 만큼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의 장점이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가 아닌 학원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했던 이유의 저변에는 나라는 사람이 일부 안정성과 학생에게 있어 선생님의 존재감 측면에서 볼 때 학원강사보다는 학교 선생님이 괜찮지 않나 하는 역시나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편협한 꼰대이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고등학교 교사이시기도 했고 저도 처음엔 학교에 갈 생각이었는데 실습하면서 공립이 아닌 사립학교 안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는 그 외에 인맥관리와 교내에서의 정치에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걸 알아버려서 저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립은 한번 학교가 정해지면 학교를 옮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으니 한번 보는 사람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만 하니까요."


듣고 보니 누구보다 바로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전공의를 마치고 대학병원에 남을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던 이유가 계속되는 논문의 압박도 물론 싫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똑같다는 점이었다. 승진을 위해서는 병원 내 정치도 신경 써야 할 것이고 생각만 해도 속 시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퇴국 후 육아를 앞세워 잠시 일을 쉬고 있을 때 전공의 시절 매일 새털처럼 가벼운 나와의 대화를 썩 좋아라 하셨던 한 교수님께서 '우리 과에 지금 촉탁의(논문을 쓸 필요 없이 봉직의처럼 해당과에 근무하면서 전공의들에게는 교수님이라 불리는 자리)를 구하고 있는데 네가 꼭 왔으면 좋겠다' 권하신 적이 있었다. 근무조건이 나쁘지 않았고 항시 지나간 기억은 미화되는 법이라 당시 교수님들과의 생활이 즐겁기만 했던 추억으로 기억되어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 차리고 재차 정중히 거절했다. 


며칠 전 대학병원에 남아있는 나이는 한 살 어린 동기가 동기들 단톡방에서 농담으로 

"누나 와요. 누나 의국 오시면 막내 스텝이시지만 제가 누님 대접해드릴게요. 일도 많이 내리지 않겠습니다." 하는데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참 고오맙다. 

일을 아랫사람에게 내린다는 개념 자체가 어느새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개념이 되어 있었는데 다시 들으니 정말이지 그때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나 자신을 격하게 칭찬했다. 


차분하고 철학적인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요즘은 교권이 예전 같지 않아서 학생들이 공짜로 다니는 학교 선생님 말은 안 듣는데 학원은 본인이 돈 내고 다니는 곳이다 보니 오히려 학원 선생님 말은 귀담아듣기도 해요."


"아이고 그거 정말 큰일이네요 큰일!"


정말이지 진심으로 현시대의 학교와 교육이 걱정스러워진 나는 시술실 안에서 홀로 호들갑스러웠고 차분하고 진지하며 철학을 좋아하는 그녀는 시술로 인한 약간의 불편감과 통증마저도 차분하고 조용히 잘 견뎌내 주었다. 





세상 단순한 내 머릿 속에 각인된 그녀의 철학적인(?) 생활 환경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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