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설명했듯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진료실에서 보고 시술실로 이동해서 짧게는 30분, 길게는 2-3시간 나와 함께하는데 수면마취 없이 깨어있는 시술이라 대부분 긴장상태에서 포를 덮고 목소리로 나와 소통하게 된다. 내 나름대로는 나와의 대화가 그들의 긴장을 풀어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떨려 죽겠는데 제발 말 좀 그만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니 혹여나 그런 의중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그 즉시 입을 닫고 침묵하고 있다.
어찌 됐건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날의 기억이고 시술과는 전혀 무관한 그들의 개인사와 당시 내가 느꼈던 상당히 가벼운 생각의 기록이다.
하와이녀
그녀는 현재 40대 중반으로 20대 후반까지 미국은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중 서른 즈음 처음 미국으로 어학연수라는 명분 아래 떠나게 된다. (그냥 삶이 지루해서 직장을 그만뒀다고 표현했다.)
처음 어학연수기간 중에 현재의 미국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이내 결혼해서 남편을 따라 도시 이동을 몇 번 거친 후 지금은 하와이에서 산지 10년 정도 되었다. 지금은 딸과 함께 2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볼 겸 한국에 방문한다.
하와이에서 그녀는 눈썹 왁싱샵을 운영 중인데 그 수요가 생각보다 많아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눈썹 왁싱이라니 나는 도대체 그걸 왜 하지 싶었는데 하와이 인들은 눈썹털이 다분히 신경이 쓰이나 보다.
나 역시 남편이 한때 꽂혀서 하와이 2년 살기에 함께 관심을 두었었던 터라 그녀의 대략적인 현재 상황을 파악한 후 물었다.
"하와이에 10년이나 살아보니 어떠세요?"
사실 질문하면서 내가 예상했던 대답은
"사람 사는 게 결국 다 거기서 거기죠." 또는
"도시 생활과는 많이 다르긴 하죠." 정도의 다소 심드렁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말했다.
"매일이 천국이죠."
순간 약간 벙쪘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다. 그녀가 지금 하와이에서 1년 살기를 막 끝낸 사람이라면 내 기준에 가능할 법한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지금 10년이 넘었는데 매일이 천국이란다.
순간 반어법인가? 싶었지만 이내 이어진 그녀의 진정 어린 하와이 예찬에서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정말 하와이는 10년을 살아도 매일이 천국인 걸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떠나서 나 역시 정착을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천국에서 좀 살아보자!
나는 물론 많은 여행 중에도 꼭 돌아올 때쯤 되면 한국음식을 찾고 뭐든 빠르고 신속한 한국 서비스가 그리운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매일이 천국이라는 생각은 진정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녀가 하와이는 천국이라고 표현한 부가적인 설명에는 아이들 교육, 날씨, 사람들의 생활 태도, 인간관계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난 이유가 무엇이건 됐고 그냥 '천국'이라는 단어만 뇌리에 꽂혀 버렸다.
내 사고의 흐름은 사실 좀 단순한 편이어서 그녀의 말 한마디에 천국 프로젝트를 당장 진행시켜야 할 것 같았다. 천국에 살 수 있다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왔다. 오늘도 나는 택시기사님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환승연애를 시청하면서 조용히 출근한다.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검색의 천국 하와이 여행 가이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