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화백 Oct 15. 2022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_혼자 사는 사업가


혼자 사는 사업가


 안경을 쓴 정직한 인상의 남성이 들어왔다. 30대 후반의 그는 업사이클링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인 스타트업 사업가이다. 대학시절부터 사회봉사에 관심이 많던 청년은 꾸준히 다양한 봉사에 참여했고 1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공익활동을 메인으로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간의 경력과 인맥을 이용해 현재는 산업폐기물을 활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 사업을 시작했으며 다양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사업을 키우려 현재는 정신없이 바쁘다. 그는 현재도 봉사단체를 운영하면서 주말엔 다양한 봉사자들을 만나고 사업 때문에 여러 기업과 단체의 대표와 지역 유지와의 만남도 잦다고 했다.


  그는 누구보다 본인이 추구하는 세계관이 뚜렷하고 지금까지 인생의 행보가 일관된 사람으로 느껴졌다.  역시나 나는 인생을 돌고 돌고 돌아가기 전문가로서 단박에 그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일단 자기 심지가 분명했다. 좋고 나쁜 본인만의 기준이 명확히 있어 보였고 특히나 사람 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허허' 하는 인간인 나와는 달리 보다 이성적인 단호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업사이클은 평소 전혀 관심 밖 분야이다 보니 이것저것 궁금했다. 부끄럽지만 전 세계의 갈수록 심각해지는 쓰레기 처리 문제와 그로 인한 온난화, 빙하 상실로 불쌍한 북극곰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정도가 내가 가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세상 '귀여운' 토실한 북극곰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하니 진심으로 안타까웠을 뿐이다.


주기적으로 플로깅을 하며 한강의 쓰레기를 줍고 산업폐기물을 이용한 업사이클링 사업을 진행 중인 그에게 당신은 과연 얼마나 진심으로 환경을 걱정하고 있는지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 없이 당장 오늘 하루만 아등바등 살아내며 종이 스트로를 주는 카페를 일단 달가워하지 않는 아주미보다는 확실히 환경문제를 인지하고 보다 나은 전 세계의 건강한 미래를 갈망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확고한 본인의 신념을 가진 30대 후반의 남자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산지 오래되었다 했다. 부모님 집이 멀지 않음에도 일찍이 독립을 했다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고 심지가 굳건해 보이는 환경 사업가는 대답했다.


"저희 어머니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나왔어요. 자꾸만 맛이 없는데 먹으라고 해서."





아....?

이 남자의 이 발언을 나는 어디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진지했다. 물론 이 한마디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수 있다. 단순히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뒤에 덧붙인 '맛이 없는데 먹으라고 해서'가 더 주된 이유일 것이라 나는 빠르게 판단했다.


그의 어머니는 다소 강압적인 성격이거나 또는 다 큰 아들의 자립성과 자유의지를 인정하기 힘든 내 품의 자식을 버리지 못하고 계신 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식의 건강에 집착하여 과하게 건강한(맛없는) 음식을 고집하셨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단순하게 아들이 집을 떠난 이유가 '맛없는 엄마의 음식'은 아닐 거라며 계속 다른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은 절대 내가 음식을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까지 그와 나누었던 그의 봉사정신, 인생의 가치관, 새롭게 시작하는 환경사업 등 그와의 대화는 모두 뒤로한 채 나에게 그는 그저 '엄마 밥이 맛없어서 집 나간 청년'이 되었다.


이어서 나의 사고의 흐름은 작고 귀여운 나의 4살 아들이 훗날 "엄마 밥은 너무 맛이 없어! 이제 집을 나가겠어!" 라며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를 떠나는 장면까지 이르러 가슴이 덜컹했다. 갑자기 슬퍼졌다.

구질구질하게 나는 다시 물었다.


"어머님이 집밥만 주셨던가요? 배달음식은...."


"네. 그냥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자꾸 먹으라고 해서요. 정말 맛이 없거든요."


휴.. 다행이었다. 비록 그는 끝까지 '맛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긴 했지만 어머니가 여타의 바깥 음식보다는 본인 음식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 확고한 남자의 어머님은 도대체 왜 그러신 걸까.

배민 VIP로써 요즘 세상에 맛있는 배달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 좋은걸 이용하지 않고 본인의 고집과 아들과의 관계를 맞바꾸신 걸까. 지금 시술실에 있는 이 남자보다 그의 어머니와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쨌든 봉사에 뜻이 깊고 환경을 걱정하는 열정적인 사업가와의 대화를 통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아들에게 절대 맛없는 음식을 강요하지 말아야지!

( =앞으로도 지금처럼 배민 VIP를 유지해야지!)






동글동글 귀여웠던 내 만두가 엄마 밥이 맛없다며 내 곁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이미지 출처는 눈물 왈칵 쏟았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 "Bao")

                    

이전 04화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_차분한 국어 선생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