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화백 Oct 18. 2022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_담담한 캔디



담담한 캔디


  양볼에 홍조를 머금은 앳된 20대 초반의 여성이 수줍게 들어왔다. 말투와 목소리에서 '나 아직 어려요.'라고 표현하는 순진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현재는 가수를 꿈꾸고 있어 유튜브에 간간히 노래를 업로드하고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찾아가 본인을 알리고 있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 취향은 서정적이고 기타 연주와 함께 하는 잔잔한 음악인 듯했다. 술이나 유흥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조용조용하고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본인의 인생과 꿈에 있어서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한걸음씩 차분히 전진하는 소녀의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가 특별히 묻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본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저희 엄마가 거식증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몸무게가 28킬로였어요."  




다소 충격적이다. 일단은 그 사실 자체를 듣는 사람도 마음이 어려워지는데 이런 이야기를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는 이 어린 여성도 조금 놀라웠다.


평소 나의 대화는 무거운 이야기를 상대가 털어내면 속으로는 감정이 요동칠지언정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치게 된다. 상대방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게 어려웠든 아니든 그 내용에 지나치게 이입했거나 동요되었음을 겉으로 드러내면 상대가 동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거식증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심한 우울을 동반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자세히 물을 이유도 없었고 더 이상 대화 소재로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금까진 외할머니와 지내왔고 최근에는 본인을 평생 보살펴준 외할머니와 사이가 틀어져 독립을 결심한 상태이며 새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본인에게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그녀 말에 의하면 외할머니는 전형적인 욕쟁이 할머니이신 듯했다. 화가 나면 욕부터 튀어나오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고 이제는 혼자 살고 싶어 할머니와 싸우고 집을 나와버렸는데 당장에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아 잠은 찜질방에서 해결하며 집을 구하고 있다 한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그녀의 상황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상당히 버티기 힘든 극한의 상황임이 틀림없다. 아마도 어린 시절 반복되는 불행이 그녀를 무뎌지게 만들었을 것이고 어찌 보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나름의 건강한 방어기제들을 사용하여 어느새 지금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되어 있는 것이다.


거식증을 앓다 자신보다도 먼저 떠난 딸을 가진 할머니의 상황과 심정은 또 어떠할까. 손녀딸을 바라보는 그 마음은 분명 그게 아닐 테지만 일생에 욕을 입에 달고 살아온 탓에 손녀가 느끼고 표현하는 불만과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도 스스로 답답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행여라도 '할머니의 그런 태도가 진심은 아닐 것이다' '손녀가 그렇게 나가면 힘들고 외로우실 텐데' 같은 말은 할 수도 없었고 전혀 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해서도 안됐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를 바라보며 어리고 미숙한 그녀는 충분히 힘들었을 테니까.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을 그 마음은 상황을 그대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위로의 말조차 건넬 자격이 없다.


물론 그녀의 상황에 비할 쏘냐마는 나에게도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가 있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 조금은 버거운 상황과 환경들이었다. 내 진료실을 방문한 그녀보다도 나는 세상 앞에 솔직하지 못했다.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미숙한 나는 그렇게 참고 참다 내 그릇에 담아내기에 도저히 한계를 느낄 때 어쩔 수 없이 폭발적으로 쏟아내곤 했다. 그런 것이 반복되감에 따라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아니 무뎌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나에게 상황을 물어보거나 위로와 함께 조언을 해주는 친척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부분에 있어 언제든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은 나에게 결코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더 무겁고 어렵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인에게 관심 갖지 않던 새아빠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와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겠다 하기에 더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겠다고 대답했다 말하는 갓 스무 살을 넘긴 그녀가 대견했다. 남보다 나를 먼저 아낄 줄 아는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져서였다.


그날의 만남 이후에도 당분간 꾸준히 내원하며 괜찮은 집을 드디어 구한 이야기, 최근의 아르바이트 이야기 등등을 전해주었다. 여전히 그녀는 담담했고 나는 다시 보는 그 얼굴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앞으로의 그녀 인생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오롯이 남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아는 한 사람으로서.



 

캔디가 남들 앞에서 울지 않게 되기까지의 노고는 캔디 당사자 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이전 06화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_한의사와 결혼한 스튜어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