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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22. 2022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_상사로서의 도리

상사로서의 도리


  사회 복지사로 근무중인 30대 초반의 여성이 들어왔다. 다소 통통한 외모의 그녀는 평소 주변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애교로 무장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말투와 표정 역시 나로서는 개미 눈물만큼도 갖고 있지 않은 그 어떤 종류의 큐티함이라서 나는 그녀를 보는 내내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업무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근무하면서 프로그램을 짜고 주로 장애인 시설 분들을 직접 모시고  민속촌이나 수목원 등 그 계절에 맞는 볼거리, 체험거리를 직접 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린다. 또 그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일거리를 제공하고 그 쓰임도 규모에 맞게 하고 계신지 자산 관리에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했다. 

내가 정확하게 그녀의 일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대략 그런 것들이 주 업무인 듯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간 살면서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이 많아 연신 "우리나라가 정말 복지국가였네요!!"를 남발했다.


그녀의 팀장님은 지금까지 일하며 두 번째로 만난 상사라 했다. 

지금까지 두 명의 팀장님을 경험하면서 두 분이 매우 다른 스타일이고 현재 팀장님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첫 번째 팀장님은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모두 가르쳐 주는 스타일이었다. 서류 작성하면서 궁금해할 법한 사소한 것들부터 먼저 상세히 알려주고 그녀가 외근을 다녀오는 날이면 그녀가 직장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퇴근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아랫사람이 일을 마치고 하루 동안 문제없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본인의 업무도 끝이 난다. 그녀는 당시 팀장님이 단 한 번도 지각하는 건 본 적이 없다 했다.


현재 팀장님은 얼마 전 새로 바뀐 팀장님으로 현재 30대 후반에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팀장님의 출근시간은 더도 덜도 말고 매일 딱 5분씩 늦다. 물론 팀장님이 5분씩 늦게 오는 것이 그녀의 일에 방해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 사실조차 정말 마음에 안 든다며 도대체 5분을 왜 늦게 오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팀장님은 그녀가 외근 후 돌아오는 시간과는 전혀 무관하게 본인일이 끝나면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칼퇴근을 한다. 한 번은 그녀가 퇴근시간 5분 전에 외근에서 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녀가 돌아와 팀장님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입에 발동을 걸자 팀장님은 "OO 씨 잠깐만, 나머진 내일 이야기할 수 있어?" 하며 바로 퇴근하셨다고  했다. (이 이야길 하며 그녀는 상당히 흥분했다.)


들어보면 두 명의 팀장님이 반대의 성향임은 분명했다. 과연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팀장님이 '좋은' 팀장님일까. 


나는 마치 세상 득도한 노인인 듯 그녀에게 나의 생각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둘 중 한 명의 상사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무조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뭐든 알려주고 내 일의 마무리를 모두 봐주는 윗사람 밑에서 나는 성장하고 싶어도 성장할 수가 없다. 물론 그녀의 현재 팀장님이 아랫사람의 무한한 발전과 성장을 생각하며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명목 아래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나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살면서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일단 그녀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나의 보고를 듣지 않고 퇴근해 버리는 팀장이 이해가 안 되고 매일 5분씩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오늘 하루 나의 일과를 듣지 않고 팀장이 퇴근해 버렸다면 나는 오늘 내 업무에 부족한 게 없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볼 시간을 얻은 것이고 매일 5분씩 늦는 팀장님이라면 나에게는 출근 후 하루를 준비할 마음의 여유가 5분이 생긴 것이다. 

윗사람이라면 항시 아랫사람이 자립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주는 것이 도리이다. 다만 기회를 주고 그 결과가 기대와 달리 좋지 않았을 때 내가 저야 하는 책임이 따르므로 신중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녀는 노인이자 인생 선배님의 말을 듣고 여전히 애교와 간드러짐으로 점철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히잉..그런가요 선생니임..?"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첫 경험과 시작은 친절하게 소개하되 부모는 금세 자식을 놓아주어야 한다. 다 큰 자식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냥 챙기고 있다면 그것은 자식이 성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기회와 권리를 박탈시키는 것이다. 결국 직장에서의 아랫사람도 내 품의 자식도 언젠가 독립해야 할 존재인데 그들의 앞길을 내가 막아서는 안될 일이다.


사실 나도 항상 스스로 인정하는 꼰대로서 내 자식이 성장했을 때 그대로 놓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분명 어떤 선택에 있어 내가 생각하고 고집하는 기준과 가치관이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녀와 상사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도 스스로를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녀 말투와 외모가 루피와 너무 닮아 루피를 검색중 발견한 '최준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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