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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Aug 30. 2016

행복이라는 항암제

마음의 부자로 살아가는 법.


1년 전 다시 한번 비전을 적어보았을 때,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건, 직업이 아닌 이루고 싶은 무언가.

직업이 바뀌고, 회사가 바뀌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이 바뀔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을 부자 만들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면 참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물론, 그 부자는 '마음의 부자'다.  


물질적인 부자가 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상대적인 박탈감도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모두에게 열심히만 일하면 다 물질적인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채찍질을 한다.
마치 열심히 살지 않아서 부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것을 현대 사회의 희망고문이라 말하고 싶다.


질병도 많이 고쳐졌고, 큰 전쟁도 없는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시대의 숙명이랄까.
인터넷으로 서로를 더 잘 비교할 수 있게 되어버린 시대의 역기능이랄까.

누군가는 모든 것을 발전으로만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모든 것을 역기능으로만 이야기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부자가 되기는 힘들고, 그래서 마음의 부자라도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간만에 따뜻한 영화를 봤는데, 월터가 나오는,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영화다.
사람들의 현실도피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삶의 정수가 현재의 보이지 않는 일상 속에 숨어있다는 걸 드러내 준 영화.
아름다운 음악과 멋진 영상미가 돋보이는 이 영화를 보며, 삶의 여유를 한 껏 되찾았다.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메시지를 주고, 그것으로 영향력을 주는 것,  
삶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자기가 느낀 행복을 슬며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스토리텔러들의 사명이 아닐까 싶다.

나도 언젠가.
책으로, 말로, 행동으로, 그 비전과 사명을 이뤄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  

슈바이처 박사가 말했던 한 글귀가 와 닿았다.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다.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 맞다. 내가 스토리를 전하려면 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문득 더위를 피해 카페를 찾다가,

카페가 정말 수도 없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 때 많은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던 작은 카페 사장.
물론 지금도 많은 이들의 로망이겠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작은 카페를 가도 그곳을 그저 커피를 파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작은 가게에 가면 일하는 분들을 유심히 살피게 되고, 그들의 꿈을 생각해보게 되고, 그들의 행복을 상상해보게 된다.
비단 카페가 아니라도 그렇다. 어딜 가나 그런 생각이 든다.

몇 해전, 한때는 전부라고 생각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삶의 흔적으로 보인다. 모두가 사장님이고. 형이고 동생이고 삼촌이고 이모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을 돌아보지 않았던 진짜 세상이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게 참 신기하고 두렵기도 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처음 둥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랄까.

지구가 둥글면 언젠가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럴 것을 미리 예상했던 영조는 내게 일찌감치 말해주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고, 좁은 줄 알고 답답해했던 세상이 실제로는 너무 넓어서 놀랐다고, 근데 막상 그걸 알게 되어 좋다고, 조언했었다.

영조가 한 말 중에서 또 나를 동하게 했던 말이 있다. 지금껏 너를 감싸 안았던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감당을 해야 할 거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에게 너의 선택에 대한 정당화를 증명할 필요 없다는 것.
너는 너의 삶이고 그들은 그들의 삶은 사는 것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보다 먼저 대기업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던 영조의 그 말이 참 많이 와 닿았었다.

나는 지금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새로운 소속감을 만들어 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자유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하며 몇 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어떤 삶이든 맞다 아니다는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모든 내 삶을 진심으로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모든 타인의 삶 또한, 진심으로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인간은 나약하여 절대로 '이해'라는 걸 할 수 없고, 그저 '오해'만 하지 않으면 성공이라고 했던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며, 그저 자기 기준에서 평가를 할 뿐인데,
누군가의 삶을 쉽게 평가하는 오만을 범하지 않으려는 겸손한 마음만 있어도 성공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다면, 결정을 해야 한다.
결정하지 않으면 또 타인을 평가나 하고 앉아있을게 뻔하기 때문에, 또 자기 선택을 후회하고, 뒤 돌아볼 게 뻔하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든 결정하는 의지가 필요한 것 같다.

절대로 내 결정과 삶을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 없다. 남들을 따라 성공을 찾게 되면 자기의 진정한 인생을 놓치게 될 확률이 크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그저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인생을 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스스로 다짐해 본다.
남들이 한다고 따라가지 말길.
남들이 완벽해진다고 나도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길.
스펙을 위해 껍데기만 쫓지 말길.

에어컨 빵빵한 어느 이름 없는 작은 카페에서,
나는 사회가 제시한 모범답안을 포기하는 대신

행복과 낭만이라는 항암제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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