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 터키 여행 #1
터키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곳이다.
인간이 임의로 나누어 버린, 문명과 인종,
그리고 종교의 경계에서
찬란한 만큼 슬픔 또한 가득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빌미로, 시간 여행자들에게 손짓하며 살아가는 그런 나라.
드넓은 그 땅의 주인이
곧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나라.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그리스 신화의 신비로움이 있고,
알렉산더 대왕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곳.
로마의 웅장함과 콘스탄티노플의 섬세함이 녹아있으며,
투르크 민족의 강인함과 오스만 제국의 찬란했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에 걸쳐 있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터키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서 가교 역할을 해왔다.
모든 것을 품어 안은 진정한 화해와 공존.
같은 종교끼리,
그리고 다른 종교 간에 서로의 것을 지키고자
문화를 파괴하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문화를 세우길 반복했던 나라.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지속되었던 역사의 흔적들을 보면서 인간의 집요함에 감탄했고,
그것을 힘없이 무너뜨리는 자연과 역사의 흐름이 두려웠으며,
결국 신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부질없음을 생각했다.
이 드넓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
아니, 그러한 경계가 통용되지 않는
지구 상의 이 축복받은 아름다운 땅에서
현재의 나는 과거를 떠올리며 한 없이 뭉클했다.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크고 작은 흔적들이 나에게 그 시절 그들의 삶을 보여줬고,
그 안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한 줄의 역사가 주는 기백에 어지러웠고, 그것을 느낄 수 있음에 감탄했다.
터키에서 느낄 동서양 교류의 살아있는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와 숨 쉴 때,
나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난 여행자임을 실감했다.
이럴 때라도 역사를 전공했던 역사학도의 정신이 발동해서 참 다행이다.
이번 우리 가족여행은 10일 동안의 터키 일주이다.
왜 하필 터키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그냥 터키에 가고 싶었다.
가끔은 이유가 없는 법이니깐.
역사와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그곳.
형제국가라 불리는 그곳을 거닐며
이제는 손잡기도 어색해진 부모님의 팔에 슬며시 팔짱을 끼고,
유적지를 거닐고, 해변가를 산책하며,
버스 옆자리에서 몇 시간씩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터키일주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이즈밀 - 에베소 - 쉬린제 - 쿠사다시 - 파묵칼레 - 케코바 - 안탈리아 - 콘야 - 카파도키아 - 카이세리를 거쳐
다시 이스탄불에서 마무리하는 코스.
터키는 정말 넓었다.
미리 짜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정말 엄청 달렸다.
그렇게 달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처음 이스탄불에 내린 뒤,
우리는 바로 터키의 국내 항공을 타고 터키 동쪽의
이즈미르로 향했다.
에게해의 중심도시 이즈미르.
에게해는 일찍이 문명이 발생한 지역임과 동시에
고대의 중심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 후 그리스와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진 에게해 주변 문명은 그 옛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즈미르 가까이에 있는 에베소에서 고대 로마의 도시 유적을 보고 나니,
비로소 이국 땅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 곳은, 소아시아 최고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었다.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지만,
그 고대도시의 영광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성모 마리아 교회와 아르카디안 거리, 원형극장도 인상적이었지만,
여전히 웅장함을 자랑하는 켈수스 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죽에 글을 새겨 두루마리 장서를 만들고,
가죽이 부패하지 않도록 바람이 가장 잘 통하는 곳에 만들어진 도서관.
전성기 때는 1만 2000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였을 것이다.
지식을 쫓았던, 책을 통해 인류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했던 선조들.
2천 년 전,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도서관을 지으며
로마의 이름을 드높였을 그들.
도서관 앞에 앉아서 잠시나마 그들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로마의 흔적들.
삶의 터전이었던 거리, 욕장, 공중화장실, 주택 터, 신전 등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좇아 걸었다.
대리석을 비롯한 돌로 만들어진 덕분에 2천 년이 흘러도 그 형태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대단하기도 했다.
그 당시 노예들과 장인들이 이루어냈을 흔적이 가엽고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에게해 휴양의 중심인 쿠사다시.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터키가 휴양지로서의 매력을 지닌 줄 모르고 있었다.
가을이었는데도 여전히 푸른 바다와 따뜻한 해변이 여독을 씻어주는 듯했다.
가족과 함께한 생애 첫 해외여행.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누나와 내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이 여행.
아마 두고두고 기억되겠지.
하루하루가 참 애틋했다.
나이가 드시면서 더 귀여워지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 같은 누나와 함께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현재가 주는 감사함을 충분히 만끽했다.
도시가 주는 세련됨 속에서도,
자연이 주는 웅장함 속에서도,
바다가 주는 푸르름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모든 추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터키 에게해 지역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파묵칼레를 여행했다.
새하얀 석회층으로 유명한 도시.
마을 뒷산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석회층이 마치 목화솜이 만들어낸 성 같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목화의 성’이라는 뜻인 파묵칼레가 되었다.
석회층 뒤편으로 자리한 고대도시의 흔적 또한 시간 여행자들을 설레게 해주었다.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자연과 역사의 조화로움 속에서
터키의 매력을 잔뜩 느끼고 왔다.
뜨거운 햇살이 우리의 여행을 축복해준 덕분에,
자연스레 다른 여행자들 틈으로 끼어들 수 있었다.
특히 유적 중간에 온천이 있었는데,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모습이 참 신선했다.
고대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유물 한가운데 위치한 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란!
가족들과 함께여서 아쉽게 스쳐 지나갔지만 그 자유로운 사람들을 통해 잠시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찾은 터키의 지중해.
지중해 최대의 휴양도시로 불리는 안탈리아의 리조트에서 터키의 또 다른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터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인간적이고, 뜨거운 나라였다.
나의 터키 일주 중 절반을 함께한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에는
어딜 가나 푸르른 여유로움이 있었고,
햇볕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여행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넉넉함과 자유함이 있었다.
유럽인들의 휴가는 언제 봐도 느긋하다.
그저 바다를 찾아 눕고,
태양에게 온몸을 맡기고,
바다에 뛰어들어 맡긴 몸과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그네들.
우리 가족도 덩달아 해변가를 참 많이 걸었다.
엄마는 과감히 이 곳을 지상낙원이라 칭해주셨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을 수 있는 여행.
매 순간이 뭉클했고, 아련했다는 걸
부모님께서 아셨을지 모르겠다.
다음날 우리는 케코바의 침몰한 수중도시를 찾아 떠났다.
바닥이 뚫려있는 유람선을 타며,
투명한 지중해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
그 바다와 그 바람이 주는 설렘 속에서
침몰해 있는 바닷속 도시 세계를 상상해보는 그 순간은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2.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이야기와
#3. 터키의 심장 이스탄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