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 터키 여행 #3
카파도키아 카이세리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터키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동서양의 찬란한 문화가 꽃핀 터키의 영원한 수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왔지만,
이스탄불은 여전히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찬란한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특히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는 전 세계 수많은 여행자들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스탄불을 일컬어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 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의 삶이 녹아있는 구시가지는
터키 여행의 피날레로 우리 가족을 이끌어 갔다.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하는 경계선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
해협의 동쪽이 아시아, 서쪽이 유럽이다.
예부터 국제 무역의 중심이었던 이 곳은
흑해와 지중해,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수로로서
중세부터 이어진 중요한 무역거점이었다.
동양의 진귀한 문물과 신비로움이 전해졌던 바다.
서양의 이국적인 매력이 호기심과 함께 실려갔던 바다.
문화가 오가고,
종교가 오가고,
기쁨과 슬픔이 오갔을 이 곳.
유람선을 타고 해협을 거닐며
그 옛날 문명의 경계에서 그들이 느꼈을
'설레는 두려움'과
'찬란한 위태로움'을 아늑히 만끽해보았다.
그리고,
이스탄불을 더 위대하게 만들어 주는 인류의 걸작품인 아야소피아 성당(Hagia Sophia Museum)을 경건한 마음으로 방문했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기술자 100명과 연인원 1만 명을 동원해 5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이 성당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하기 전까지
이후 약 9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당으로 영광을 누렸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도시를 점령한 뒤 비잔틴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성당을 방문하게 된다.
당연히 정복과 동시에 허물어져야만 하는 종교적인 건축물이었지만, 그는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성당을 허물지 않았고
대신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그 흔적들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가 곧 전쟁이었던 그 옛날
타교를 감동시킨 아름다운 건물.
그렇게 훗날 터키공화국이 이 성당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였다.
정복자들의 영광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피정복자들의 신념.
덧칠해놓은 회벽 안쪽에 품어둔 그들의 종교적인 예술품들이 공개되자 당시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 오랜 시간 모순을 함께 견뎌왔던 덕분에,
오히려 지금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공존의 흔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이스탄불의 가장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본당에 들어서자마자 그 규모에 압도되고 말았다.
신에게 바치는 건축물로
평화로움을 유지하고 싶었던 황제의 마음.
성당은 그 황제의 염원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그리스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의미 있는 석재들을 이용해 지어졌다.
현대의 발전된 기술력으로도 다시 지어지기 어렵다는 불가사의한 건축물.
신에 대한 그들의 영엄한 의지 앞에서,
그저 감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당 곳곳과 천장에 자리한 금빛 모자이크화와
벽화가 경건함과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특히 최후의 심판에 임하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세례 요한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 앞에서는 제법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 작품의 정교함과 완성도는 물론이거니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두려움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믿음으로 덮으려 했던 이슬람의 흔적 또한 묘한 조화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야소피아 성당의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미인 블루모스크(Sultan Ahmed Mosque).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 타일로 되어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 이름 붙여졌다.
역시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이 곳은
건축가와 장인들의 기술또한 기독교의 건축기술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정복자들의 의지가 담겨있는 건물이다.
아야소피아 성당보다 실제 크기는 더 작지만
건축구조의 완벽한 균형미가 돋보이는 오스만의 걸작품이다.
실제로 1만 명 이상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곳은
하루 다섯 차례씩 기도가 드려지고 있는 종교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도 최대한 그들의 종교에 대한 예의를 지켜가며, 그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역사의 유적임과 동시에 종교의 터전으로 여전히 그 용도를 다하고 있는 장소.
신에게 기도하는 그들의 성스러운 공간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또 구시가지에서 놓칠 수 없는 명소 중에는
그랜드 바자르가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구시가지에 위치한 터키 최대의 재래시장으로서 무려 500년도 훌쩍 넘은 시장이다.
터키어로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온갖 물건들이 오갔던 중요한 교역의 메카였다.
우리 가족은 이 곳에 오래 머무르며,
찻잔, 거울, 옷감 등을 저렴하게 구매했다.
어쩌면 여행 일정 중 누나와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아빠와 나는 역시나 짐꾼 노릇을 했고, 익숙한 이 순간을 함께 즐기며 끈끈한 동질감을 형성했다.
역사의 흔적이 아닌
살아있는 터키의 또 다른 매력은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에서 누릴 수 있다.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역사와 자연을 쫓은 여행이 아니라
온전히 유럽여행을 만끽했던 순간.
이것이 터키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터키를 두고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라고 일컫는 이유를 온몸으로 느끼고 왔다.
신시가지에서는 오스만 제국 말기에 술탄이 거처했던 돌마바흐체 궁전을 구경하며,
서양과 융합하려 했던 오스만 제국의 찬란했던 마지막 역사를 거닐었다.
터키에서 보낸 열흘간의 가족여행.
가족과 함께여서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았다.
대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역사의 흔적들이 건네준 1만 년의 시간여행.
지극히 외로워지곤 했던 여느 여행과는 달리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저 아늑하게 느껴졌던 따뜻한 여행.
이게 가족의 힘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 이제 또 언제 이런 여행을 함께하게 될지 모른다.
물론, 또다시 계획하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이 내려놓음의 행복을 가족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
평생을 가장이라는 책임감 속에 무겁게 살아오셨을 아버지와
모든 걸 품어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엄마’라는 무게를 견뎌왔을 어머니.
당신들이 이 여행의 자유로움 속에서
잠시나마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할 것 같다.
여행의 다른 말은 내려놓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