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만 알 수 있는 낭만
그토록 원했던 가을 캠핑을 다녀왔다.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바로 그것.
단풍이 슬며시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와 흙 내음 가득한 숲 속.
신선하고 진한 농도의 맑은 공기가 있고
모닥불 피우는 향기가 감성 자극한 곳.
새소리와 새벽이슬에 잠에서 깨어나는
이른 아침 자연을 풍경 삼아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그런 경험.
가을 캠핑은
가을이 주는 아늑함과
캠핑이 주는 낭만이 더해진 합성어이다.
드디어 우리 부부도 첫가을 캠핑을 다녀왔다.
사실 난 워낙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사계절로 캠핑을 즐겼었는데,
아내와 함께 캠핑을 가는 건 처음이다 보니 좀 더 설렜던 것 같다.
게다가.
늘 텐트와 캠핑 장비들을 빌려서 다녀오곤 했었는데,
아끼고 아껴서 마련한 우리 부부만의 캠핑 장비들을 직접 이용하는 캠핑이라 더 특별했다.
장만해야 되는 캠핑 장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사야 할 물품들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캠핑의 고수들이 적어 놓은 블로그를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다음 두 가지의 캠핑장비 구매 법칙이 있다.
1.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은 장비들을 사지 말 것!
2. 캠핑을 다녀보며 자기에게 맞고, 진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추가로 살 것!
그래서 우리도 우선 꼭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여 갔다.
(*Tip! 사실, 필요한 건 웬만한 캠핑장 매점에서 다 빌리거나 구매할 수 있다.)
이번 캠핑은 친구 부부와 함께 떠났다.
캠핑장은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남양주 어느 캠핑장.
우선 자리 확인 후 텐트 설치.
예전에는 진짜 이게 일이었다.
낑낑대며 한 시간 넘게 텐트와 씨름하기가 예사였고,
남자의 자존심은 무너지며,
엄마와 아이들은 아빠의 얼굴만 애타게 바라보며
어디 앉을 곳도 없이 서성이는 걸로 더 부담을 주곤 했던 바로 그 아빠의 텐트 설치!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텐트 설치가 20분 남짓 걸린다.
내가 산 K사의 텐트만 하더라도,
이너텐트(실제로 잠을 잘 수 있는 텐트의 가장 안쪽 공간)가 거의 원터치 수준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방수매트 위에 이너텐트를 설치하고, 그 위에 타프를 덮어주면 끝!
우리가 좀 늦은 시간 만났기 때문에
텐트를 설치하자마자 바로 해가 어둑어둑해졌다.
바로 의자와 식탁, 화로 등을 세팅하여 바비큐 파티를 시작했다.
가을 저녁 바비큐와 함께한 캠프파이어.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잔.
게다가 이 가을밤 캠핑의 감성과 어울리는 스피커 속의 흑인음악.
그 모든 게 너무 완벽했던 저녁이었다.
우리의 감성 수다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고,
삼겹살과 목살이 끝나고,
송이버섯이 끝나고,
칼집을 낸 프랑크 소시지가 끝나고,
호일에 싼 군고구마가 끝나고,
김치를 넣은 신라면이 끝나고,
마트에서 산 귤이 끝나고,
인스턴트 커피가 끝날 때까지도 끝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쌓여가는 맥주 캔만큼이나
우리의 추억도 쌓여갔다.
이래서 다들 캠핑, 캠핑하는 거구나 싶었다.
게다가 아내와 친구의 와이프 둘 다 캠핑이 처음이라,
춥다거나, 불편해한다거나, 재미없어한다면,
나의 로망이 이번 한 번으로 끝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조마조마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두 여인께서도 아주 만족을 하셨다.
심지어, 다음 캠핑의 약속을 잡으시기도 하시며,
다음에는 텐트 주위를 좀 꾸며볼까,
빔프로젝터를 사서 같이 영화를 볼까 등등의 아주 건설적인 말씀도 하셨다.
가을 캠핑!
말만 들어도 설레는 누군가의 영원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떠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날마다 여행 배낭은 무거워지는데,
그 무게 때문에 정작 떠날 수는 없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요즘은 가을이 너무 짧아져서
마치 정차하지 않는 열차처럼 정거장을 스쳐 지나가버린다.
옷장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트렌치코트를 과감히 꺼내 입고 출근했는데
그것도 잠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낭만은 절대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쟁취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자연을 참 좋아한다.
자연 속에서는 고층 빌딩과 아스팔트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물론이지만 자녀들에게도 자연 속 체험이 꼭 필요하다.
주말에는 학원이 답이 아니다.
특히 가을에는 더더욱 그렇다.
도심 속 아파트에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일까?
바로 "하지 마!"이다.
뛰지 마, 티비 보지 마, 장난치지 마, 떠들지 마, 놀지마, 등등등 온통 하지 마 투성이다.
근데 자연 속에서는 완벽한 반전이 발생한다.
뛰어, 해봐, 소리쳐, 만져봐, 놀다 와 등등등. 긍정적인 언어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교육은 자연이고, 자연으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아마 들어 본 적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방금 만들었으니깐.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자주 캠핑을 갔었다.
가족끼리 산에서 오손도손,
한 텐트 안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보냈던 그 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선물 같은 시간을
나의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나중에 아이가 생겼을 때
온 가족이 주말마다 캠핑을 떠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
가을과 캠핑이 주는 이 완벽한 조화로움 덕분에
스쳐 지나가는 이 계절은
우리 부부에게 잠시 동안 머무르며
추억을 남겨주고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