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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Nov 18. 2016

사필귀정(事必歸正)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국민들의 자존심을 위하여.




높고 푸르른 가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즈려밟으며

한껏 차분해진 가을 공기를 누려야 하는데.


미세먼지와 트럼프 당선인 덕분에

차분히 가라앉은 건 가을 공기가 아닌 증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한 명인 줄 알았던 우리나라 대통령은

한 명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고,

두 명이 다스렸던 나라는 국민들을 두 배로 실망시켰다.



기사를 읽고,

또 다음날 새롭게 등장한 기사를 읽고,

도 그다음 날 등장한 더 큰 기사들을 읽느라고,


정작 내 생각을 글로 쓸 시간이 없었다.



생각이 참 많았었는데,

많이 분노하고 실망했었는데,


이제는 좀 차분해진 것 같다.


감정이 회복되었다기보다는


분노와 실망의 감정이,

놀람과 어이없음의 감정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며

겨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가로수의 낙엽이 유유히 떨어지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민들은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들었고,

언론은 처음으로 민중의 언론이기를 자처했으며,

IT 강국다운 대한민국의 위대한 네티즌이 처음으로 한마음을 모았다.


네티즌들의 아이큐를 합치니

500 정도는 되어버렸고,

그 어떤 것도 그들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야 드디어 참여정부의 민주주의가 도래되는 것도 같다.



예전처럼 숨기면 될 줄 알았는데,


우리의 위대한 기술력은

숨긴 것 까지 시간을 거슬러 찾아낼 수 있게 되었고,


그로써 과거도 없어지고, 비밀도 없어지게 되었다.


무서운 그 기술력이 두렵기만 했었는데

이게 또 정의롭게 사용되니,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고 했던가.


나라를 다스리는 왕과 백성들 간에는 늘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욕심을 위한 왕은 늘 민중에게 미움을 샀고,

백성을 위했던 왕은 늘 욕심이 가득한 자들의 미움을 샀다.


결국 무언가를 사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왕 사야 한다면 5천만 민중의 미움보다는,

욕심이 가득한 몇몇의 미움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必生卽死)



이순신 장군은 말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물론, 지금은 살아날 방법이 도무지 없긴 한 것 같지만

이 말은 아직도 상황판단을 못 하고

시국을 가름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그럴만한 필연을 통해 움직여 왔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

반드시 일어나야만 할 때에 자연스레 발생해왔다.


역사의 흐름에는 억지가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비단 이번 정부의 잘못 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그동안 많이 참아왔다.



정경 유착되어있는 사회의 가련한 구조를 많이 참아왔고,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검찰들이 권력 앞에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많이 참아왔다.

돈 있는 자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가혹한 행위를 참아왔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묵인해주는 정부를 참아왔다.


경제를 살려 준다는 말을 믿으며 참아왔고,

내가 아닌 내 자식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거라는 눈물겨운 인내의 말을 참아왔다.


미국을 위한 사드 배치도 참아왔고,

선거 때마다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의 짜고 치는 고스톱도 참아왔다.


민중의 편이었던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참아왔고,

심지어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만행도 참아왔다.



하지만 풀어내지 못한 인내는 반드시 터지기 마련이다.


마치 수도를 약하게 틀어 놓은 세숫대야처럼

언젠가는 차고 넘치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불신과 분노, 실망감이 폭발해 버린 시기.


비록 집중 타깃은 대통령을 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 모든 미운 감정을 토로할 탈출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비리가 아닌,

그네들의 모든 비리에 분노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특혜가 아닌,

그네들의 모든 특혜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들은,

촛불을 든 우리들은,

그리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잘 참아왔던 것뿐이다.

당신들을 너그럽게 봐주고,

또다시 기회를 주며 응원했던 것뿐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 있었고,

오늘 하루 학교와 일터에서 너무 힘겨웠던 나머지

누군가를 욕하고 원망하기 싫었던 것뿐이다.


당신들의 생각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리 무능하지 않다.



잃어버린 7시간을 찾아내기 위해,

2년 반 동안 광화문에서 노란빛을 밝히고 있는 의지의 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잘못한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자기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를 찾아가야만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사필귀정,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필귀정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이렇게 뜨겁게 국민들을 화합하게 해 준 것도 고맙고,

언론에 대한 불신과 편 가르기를 완화시켜 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게 해 준 것도 고맙고,

정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학생들을 흔들어 깨워준 것도 참 고맙다.


검찰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준 것도 고맙고,

그 어느 때보다도 화끈했던 가을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



하지만,

이번이 끝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다.


참기만 했던 우리는

비싼 값을 주고 학습을 하고 있다.

뒤돌아서 망각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값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속상한 값 지불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 더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갈라질 언론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당선을 위한 정치가 더 중요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억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국민들의 자존심(自尊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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