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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19. 2022

최근에 들었던 가장 무시무시한 말

- 독하디 독한 외모 지적 

 순하게 처진 눈매를 가졌고 몸 전체에 직선이란 없는 것 마냥 동글동글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청소년 시절의 나는. (다양한 별명 중에서 스스로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건 "코알라"였다.) 하지만 나는 줄곧, 좀 사나운 외모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내재된 카리스마 같은 것들이 내 얼굴만 딱 봐도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바랬던 것 같다. 


그런 욕망을 완곡하게 우아하게 표현해내는 기술과 감각이 부족했던 나는 '말 걸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정도의 왜곡된 모델링으로 스스로를 다듬기 시작했다. 주로 중성적인 차림새와 짧게 자른 머리로 서툴게 구현했기에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은 '중2병 톰보이'정도로 묘사하면 딱이다. 지금의 라푼젤 헤어로 동창회에 등장한다면 옛 친구들 반응이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타고난 외모에 갇혀있다는(사실은 그에 "숨어서" 지냈지만) 생각이 들곤 했던 나에게, 이 말은 굉장히 희망적으로 들렸다. 


00살 이후가 되면 비로소 나와 어울리는 외모로 살게 된다. 

40이었나, 50이었나. 빈칸을 채울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나이 때까지는 물려받은 모습이 지배적이지만, 나이가 들면 저절로 나다운 외모를 갖게 된다니 마냥 신날 만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나와 어울리는 외모가 마냥 아름다운 외모일 거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니 소름 끼칠 만큼 무서웠다. 순하게 생긴 외모에 숨어 살 수가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 그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내 삶이, 내 선택이 고스란히 외형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예뻐지고 싶다고 소망하는 것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 외모가 곧 나라서! 만약 내면을 가꾸는 데 집중하는 삶을 살면 '그러한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못생겨진다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더 예뻐질 거라고 막연하게 다짐하고 있었건만, '나다운 외모'를 갖게 된다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




 이때부터 꽤 바빠졌다. 내가 원하는 외모가 있다면, 내가 쟁취해서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절없이 마음에 안 드는 모습으로 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봐 왔던 숱한 아름다운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갖고 싶은 외모를 선뜻 고르기는 어려웠다. 딱히 '내 것'같지가 않았달까? 누가 나에게 보여준 아름다움 말고 내가 나에게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패션, 책, 영화 등 가까운 곳에서 먼저 찾고 나중에는 멀리서도 찾아다녔다.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미술, 건축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나이가 조금 들고 나니까 자연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됐다. (어찌하여 자연을 즐기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능력만큼은 대체로 나이와 비례해서 느는 것일까! 이런 분야에서는 영재, 신동이 드물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갖고 싶은 이상적인 외모를 구체화해 나갔다.

  1.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한다. (인생설계, 사명을 설계한 과정은 추후 자세히) 

  2. 그런 사람은 어떤 외형이 어울릴지 상상해 본다. (이미지를 디자인한다)

  3. 그런 모습의 사람은 어떤 하루하루를 살지 상상해 본다. (실천, 행동으로 연결한다)  

  4. 내가 정립한 이상적인 외모가 실제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일치하는지 점검한다. (주기적으로)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계하고 세계관을 짜는 것처럼 '이 사람은 어떤 취미를 갖고 있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어떤 사람을 만나나?' 하는 설정을 다양하게 상상해 본다. 그 사람의 표정과 자세, 자태, 입은 옷의 스타일까지 상상한다. 1번의 과정이 어렵다면, 3-2-1의 순서로 거꾸로 시도해 보는 것도 꽤 괜찮다. 


이것은 상상력이 강점인 나에게 잘 맞는 방식의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이렇게 내가 디자인한 외모는 vs 단순하게 내가 꿈꾸는 외모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기 인지 과정, 설계 과정은 "건강한 타자화"에 도움이 된다. 남이 하는 다이어트나 남이 들고 있는 가방을 명확하게 '남의 것'으로서 인지하면 나 스스로에 대한 스타일링은 조금 더 쉬워진다.


그러고 보니 가장 독하디 독한 외모 지적이란 혹시 이런 건가 싶다.

"너랑 안 어울려."




으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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