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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pr 03. 2022

여행 중에 사랑을 만나기 쉬운 이유

- 오만과 편견

 혼자 여행을 즐기는 여행블로거에게 궁금해하는 것들이 있다. 여행지에서의 혼밥 혼술이 쑥스럽지 않은지, 여자 혼자 다니기에 무섭거나 위험하지 않은지. 그중에서도 가장 청중(?)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주제는 아무래도 '여행지에서의 로맨스'일 것이다. 


화장은커녕 씻지도 못한 거지꼴을 하고도 여행지에서의 로맨스가 가능하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담백한 팩트로만 존재하고, 가꾸기를 싫어하거나 게으르다는 등의 견해로 이어지는 단계는 차단된다. 매너의 룰, 유혹의 룰, 관계의 룰 같은 것은 모두 달라지고 여행자로서의 새로운 룰이 적용되는 것이다. No rules rules!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나를 다른 사람이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사실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기도 하다. 오만한 나를 이해하거나 오히려 그런 면을 더 반겨주고, 내 편견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할 만한 수준 높은 누군가와 사랑하기를 꿈꾸는 것. 이런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사랑할 만큼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며 나와 아주 잘 맞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만과 편견을 기반으로 한 '필터링'은 그 효과도 적을뿐더러 부작용이 더 크다. 


오만은 무례하고 거만한 태도만을 일컫는 게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것, 나에 대한 무지, 나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낮은 자존심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나를 사랑할 리가 없어'라고 섣불리 생각하는 것. 타인의 애정을 순수하게 믿지도 받지도 못하는 그런 잡념의 기저에는 오만함이 깔려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라는 의심 앞에서 '그러고 있는' 상대는 뭐가 되겠는가! 잠깐의 의심도 예의가 아니다, 어떤 사랑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요소 하나하나를 잘 분리해서 따로 떼어놓으면 오만함은 지낼 곳을 잃는다. 나를 일상에서 뚝 떼어다가 처음 보는 곳에 덩그러니 놔두면 내 시선과 관점은 잠시나마 깨끗한 물에 헹궈낸 것처럼 새로워진다. 여행지에서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만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접할 수 없었던 종류의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누군가에게 끌리기도 한다. 하찮은 농담에 더 후하게 웃어주고, 큰 실수 앞에서도 너그러워진다. 급할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는 것처럼 굴게 된다. 


그렇게 가장 관대한 버전의 내가 지배하는 하루하루를 산다. 이럴 때의 나는 오만해 보이는 사람과도 한 마디를 더 나눠보고, 상대가 가진 편견의 담을 훌쩍 넘어 '나는 빈손으로 왔소' 하며 편견 없는 내 선의를 선물로 놓고 온다. 여행지에는 누구나 평소와는 조금씩 다른 버전의 자신을 챙겨 온다. 그 가면을 의심하고, 진짜 상대를 파악하려 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보여주는 그날의 그 사람을 믿고 사랑하는 것. 그게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 아닐까.


(지금 머리와 마음 속에 떠오른 사랑을 이야기 해 봐야겠다, 다음에는.)


오늘의 BGM

1) <La Mula>, Bebo Valdés

2) <동그라미>,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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