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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pr 02. 2022

말 걸기 쉬운 사람이 되고 싶다

- 만만한 여행자로 사는 것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호기심의 대상, 소매치기의 대상, 걱정과 염려의 대상, 어느 순간부터는 K-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문제는 그 관심의 정도를 내가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50회가 조금 넘게 배낭여행을 하다 보니 소매치기의 관심을 쳐내는 것은 그나마 수월해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여행지에서 조용히 혼자 다니고 싶은 날이 있다. 마치 자신 없는 과목의 수업시간처럼 아무도 나한테 말 걸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날. 그럴 때면 귀에 이어폰을 꽂거나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는 등의 폐쇄적인 액션을 취해본다. 이런 모습이 일종의 의사표현으로서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지만 나의 여행 대부분은 둘 중 하나였다. 난감할 정도로 관심을 받거나 멋쩍을 정도로 외롭거나.



 

 시간을 팔아 돈을 아끼던 학생 시절의 나는 궁상을 떠는 재주와 역량(?) 같은 게 있었다. 웬만한 길바닥 음식을 주워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 뻔뻔한 소화기관(feat. 악명 높은 인도 뉴델리의 노점 음식), 앞자리에서 닭이 울어대는 시골 버스 좌석 사이의 통로 바닥에 앉아서도 푹 자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덜 발달된 감각(at 라오스 방비엥으로 가는 길) 같은 것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을 피하고 거부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부족한 위생관념'등이 포함된다.


몸을 이상하게 구기거나 말아놓아도 내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각도를 찾아 잠드는 데 성공하고야 마는 나의 역량 하나를 믿고 중국 대륙을 여행하곤 했다. 극단적으로 궁핍했던 중국 유학시절에는, 한 달 30만 원을 아끼고 아껴서 그중 15만 원으로 생활비를 해결하고 나머지 15만 원을 모아 대륙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짜장면이 500원이고 뭐 그런 옛 시절이어서가 아니다!). 명칭 자체가 '딱딱한 좌석'이라는 뜻인 잉쭤(硬座) 등급을 타고 내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32시간을 앉아있는 동안 옆자리는 여섯 번 정도 사람이 바뀌었다.


그런 열차칸에서 여행자가 편하게 자면서 가려면 어떻게든 국적이 다르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되는 법. 한글이 적힌 소지품은 보이지 않게 가방 안에 꼭꼭 깊이 넣어두어야 했건만. 하필 흥미진진한 꿈에서 깨어난 나는 습관적으로 수첩을 꺼내서 꿈 내용을 적기 시작했고 타국에서 온 여행자임을 들켰다. 조용하고 꾸준하게 씨앗 간식인 꽈즈(瓜子)를 까서 먹고 있던 맞은편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한글에 대한 궁금증을 보였다. 그렇게 생긴 글자(한글)는 대체 어떻게 타이핑해야 하는 거냐는 의문에는 키보드를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답했다. '네가 쓰고 있던 메모는 무슨 내용인지' 질문하고, '발음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궁금하니까 읽어봐 달라'는 요청까지 열정적으로 답하느라 기진맥진해질 지경이었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귀찮게 됐다며 투덜거렸지만 사실 달갑고 사랑스러운 관심이었다. 아직도 당시의 대화 내용이 기억날 정도인 걸 보면 선명하게 큰 추억으로 남은 건 확실한 것 같군.





 왠지 비혼의 인생은 조금 더 철두철미하게 기획된,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인생 플랜이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똑소리 나게 알아서 잘 살 것 같은 인생에는 누구도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다. 아무런 여지도 없고, 궁금해할 빈틈조차 주지 않는 인생이라면 누구라도 말 걸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말 걸기 어려운 혼자'가 될까 염려하고 돌아보게 된다. 나는 항상 '말 걸기 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말 걸기 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자칫하면 만만해 보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대답하기 싫은 질문도 불쑥 울타리를 넘어 들어올 수 있다. 누구에게나 '침범'하듯 훅 들어오는 소통은 두렵고 어렵겠지만, 가끔은 그런 교류들을 통해 탐험하고 모험할 수 있다. 마치 여행지에서 갑작스럽게 물어오는 질문처럼. 여행지에서는 종종 뜻밖의 질문을 받고, 뜻밖의 대답을 하기도 한다. 공식처럼 적절한 대답을 정해놓고 있던 어떠한 인생의 질문들에 대해, 여행지에서만큼은 스스로가 깜짝 놀랄 정도의 대답이 무심하게 튀어나올 때가 있지 않은가. 말한 적 없었던 진짜 기분, 진짜 마음, 진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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