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화가 김현정 Sep 27. 2024

정물화에 담긴 극단적인 이야기?

동양의 정물화 VS 서양의 정물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물화는 단골 소재이죠 !

현대에도 미술을 배우는 기초 단계에서 제일 먼저 접하는 게 정물화입니다.

이렇게 단골 소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히 정물화는 단순한 사물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동서양 모두 정물화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 의미는 서로 극단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축복’부터 ‘죽음’에까지 이르는 정물화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드려요 :)



정물화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주제로 그리는 그림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다른 의미와 상징을 지닙니다. 



동양에서는 정물화의 일종인 기명절지도와 화조화가 대표적입니다. 

기명절지도는 꽃과 나무를 중심으로 새를 함께 그려 삶의 행복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양 정물화 속의 꽃병은 평안, 문방구와 책은 학문과 벼슬을 상징하는 등 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동양의 정물화는 사물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복과 안녕을 기원하고, 인생의 길흉화복을 염원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 또는 '공허'를 의미하며, 삶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상징합니다. 16-17세기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정물화에 특히 관련있는 상징과 관련된 예의 한 종류로, 특히 중세 이후 흑사병과 전쟁 등의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유럽 사회의 분위기가 반영 되어 역사적 시기와도 관계가 있는데요, 세상의 부귀영화가 결국 허무하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바니타스(vanitas): ‘공허한’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 바누스(vanus)가 어원이며 '공허', '헛됨', 또는 '가치없음',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의 관점으로, 세속적인 물건과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는 걸 뜻합니다.








일반적인 바니타스화의 상징에는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두개골, 썩은 과일, 거품(죽음의 갑작성), 연기, 시계, 모래시계(인생의 유한함), 악기(인생의 간결함과 덧없음)가 포함됩니다.



-: 꽃은 아름다움과 쇠약함의 상징입니다. 시들어가는 꽃은 삶의 무상함을 나타내며, 아름다움은 곧 소멸함을 의미합니다.


-촛불: 촛불은 삶의 불안정성을 나타냅니다. 그 불꽃은 삶의 빈약함과 얼마나 쉽게 소멸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책은 지식과 인간의 역사를 나타내는 동시에 삶의 무상함을 상기시킵니다. 바니타스화에서는 종종 책이 열려있지만 그 안은 비어있거나 무의미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일: 과일은 삶의 유혹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과일은 결국 시들어가고 부패해 삶의 무상함을 상기시킵니다.


-시계: 시계는 인간의 삶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상징합니다. 바니타스 정물에서는 종종 시계의 흐름이 빠르게 표현되어 삶의 짧은 유한성을 강조합니다.


-해골: 해골은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징합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삶의 한계에 직면하고, 결국 죽음으로 향할 운명임을 암시합니다.


-거울: 거울은 자아의 탐구와 현실의 반영을 상징합니다. 바니타스 정물에서는 종종 거울을 통해 자아의 허무함과 죽음의 얼굴을 직시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금화: 금화는 재산과 물질적인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바니타스 정물에서는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음악: 음악은 삶의 아름다움과 감정을 표현하는 매체입니다. 그러나 바니타스 정물에서는 음악조차도 삶의 무상함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내포됩니다.


-나비: 나비는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삶의 무상함 앞에서 이러한 변화와 새로운 시작은 소용이 없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바니타스 정물은 관객에게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의 무상함에 대해 심오한 사유를 유도하는데요, 이는 당시 네덜란드 사회의 종교적, 철학적 상황을 반영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좌: <Vanitas in a Petri Dish>, Suzanne Anker, 2013~2018

-Vanitas in a Petri Dish는 배양 접시에 완두콩과 벌레, 버섯과 꽃 등의 각종 유기물질을 담아 인쇄물로 전시되는데요, 접시 속의 요소들은 인간의 열정과 창조력의 확장을 드러냄과 동시에 부패에 취약하기에 죽음과 파괴를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우: <Preserve beauty>, Anya Gallaccio, 1991~2003

500개의 붉은 거베라꽃을 유리판과 전시장 벽 사이에 격자 형태로 배열했습니다. 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패하고 관객들은 처음에는 생기 있고 화려한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꽃들은 시들어 바닥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처음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계속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동양에서는 '기명절지도'와 '화조도'를 정물화의 일종으로 보는데요,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로 살아있는 꽃, 나무를 중심으로 새를 그려 넣어 꽃이 가진 복락(福樂)의 상징성을 통해 삶의 행복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으며, 서양에서는 삶의 유한함을 되새기게 하고 헛된 것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일깨우고 결국 언젠가는 사라질 모든 것을 경고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소재를 그린 그림이지만 동양과 서양에서의 의미가 천지차이인데요,

그냥 봐도 멋있고 좋은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역사를 알면 더 깊이있고 재미있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정물화를 보게되면 동양의 정물화인지, 서양의 정물화인지, 바니타스 정물화인지 아닌지 관찰해 보세요! 오늘은 정물화에서 더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꿀팁을 알려드렸습니다. ㅎㅎ




#한국화가김현정 #한국화가 #김현정작가 #동양화 #한국화 #서양화 #정물화 #미술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