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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Nov 18. 2021

만삭 임산부의 몇 가지 단상

다리가 길어도 너무 긴 아기 외




9개월 차 임산부의 몇 가지 단상

배가 부쩍 많이 나왔다. 30주까지는 사람들이 앞에서 보면 임신했는지 모르겠다 했었는데, 이제는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어느 누가 봐도 임산부. 어제 무척이나 오랜만에  동네주민분이 "사장님 혹시... 임신하셨어요?"  하셨다. 손님과  사이의 작업대로도 가려지지 않는 배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나 보다. 그런데 한날은 버스에서 "아가씨" 소릴 듣고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배불뚝이씨.


이제는 앞에서 봐도 배불뚝이. 앞치마를 해도 가릴 수가 없다.



출산용품 준비 기간

당근마켓으로는 아기침대와, 기저귀교환대와, 욕조를 사놨다. 내 손으로 무려 첫 배냇수트를 샀다. 어젯밤에는 핫딜이라고 올라온 회전딸랑이에 혹해서 첫 장난감도 샀다. 물욕이 없는 나인데 아기용품은 자꾸 현혹된다. 병원 진료시간이 조금 남아 옆에 있던 아기 옷 매장에 구경 갔다가 70% 넘게 할인하는 북유럽 패턴의 포대기에 너모나 혹해서 하마터면 충동구매를 할 뻔했다. 포대기는 요즘 안 쓰잖아... 이미 나 아기띠 몇 개나 물려받았잖아... 하면서 꾹꾹 눌러 참고 나왔다. 내일은 당근마켓으로 예약해둔 유모차를 사러 간다. 분명 유모차는 차밍이가 태어난 뒤에 직접 앉혀보고 신중하게 사려 했건만. 120만 원이 넘는데 8만 원이면, 이건 사야 하잖아 :') 유모차 세탁 맡긴 후에 차밍이 태어나면 집에서부터 앉혀서 재워야겠다. 또 차밍이 물건 보관할 용도로 내 취향의 색감을 가진 수납장을 구매했다. 아기용품 넣을 용도니 1차는 살균세정티슈로, 2차는 장난감클리너로 두 번씩 빡빡 닦았더니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보통 일이 아니네. 그래도 다하고 나니 뿌듯함이 밀려오던. 이제 넘어야 할 큰 산은 손수건이랑 의류 세탁. 아기 손수건은 먼지가 많아 빨고 말리고 하는 과정을 3번 반복해야 된다는데. "내가 할게!"하는 남편이 있어서 큰 걱정은 안 되지만 12월 초중순 몸이 더 많이 무거워지기 전에는 끝내야겠다.


어머 이건 사야해


15개나 되는 수납장 닦느라 난리부르쓰 현장.



각자의 삶
"언니 주말에 우리집 안올래요?"

내년 봄 결혼을 앞둔 친한 남편친구 커플. 출산하면 정말 못갈테니 급초대에 응해서 수원으로 신혼집 집들이를 갔다. 집들이 선물로는 대형, 정말 초대형 등쿠션과 커플파자마를 준비했다. 동탄 신도시에 올해 새로 지어진 집, 평수도 35평. 게다가 가전도 모두 LG(오브제냉장고, 코드제로 A9s, 퓨리케어 공기청정기, 오븐 에어프라이어 등) 풀세트 구성.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박만 묵고 돌아가려 했는데 하루 더 있다 가라는 제안에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까지 시간을 보냈다. 이틀간 머무르면서 도시에서의 삶, 아파트에서의 일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닭장 같아서, 천편일률적이라서, 재미가 없어서 도시의 아파트를 거부하고 시골의 전원주택을 택한 우리인데.  우리는 차로 나가야 만날 수 있는 편의점과 카페를 여기선 도보로 3분이면 갈 수 있다. 우리는 산책이라도 할랍시면 흙먼지를 마주하고 울퉁불퉁 턱을 많이 넘어야 하는데,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혀 장애물이 없었다. 또한 우리집은 해가 지면 집 앞엔 달과 별빛뿐이다. 그래서 늦여름날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지만. 반면에 눈부실 정도로 많은 조명 덕에 밤에도 산책하기 좋은 아파트 단지. 아기가 태어나기를 앞두고 있으니 편하고 안전한 도시 삶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일요일에 함양 돌아가서는 역시 우리집이 좋다고 합리화한 우리)


아파트 22층에서 보이는 일출과 시티뷰는 멋졌다.



함양에서의 평일 일상

주말에만 함양에 있던 남편이 주중에도 있으니 나도 꼭 급한 일 있는 게 아니면 대구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지난 주말 이후 수요일 아침까지 5일 연속 함양에 머물렀다. 하루는 차 두고 갈 테니 본인이 없는 사이 드라이브라도 하라는 남편 말에 출퇴근길 회사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아침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집에서 대충 먹을까 하다가 남편에게 의식의 흐름대로 카톡을 보냈다.



그리하여 같이 먹게 된 점심. 마침 팀에 팀장님도 팀원들도 출장을 가거나 자리를 비워 같이 먹을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한 시간의 데이트는 행복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야근을 한다고 예고했기에 데리러 갈 시간을 미리 알려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리하여 또 나는 읍내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그와 먹는 평일이 좋으면서도 어색했다. 야근을 하다 말고 직장 앞에 나온 그를 보며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냐? 하루 세 번은 좀 질리네." 하며 짓궂은 장난을 쳤다. 연애시절부터 결혼 1년이 넘은 지금껏 줄곧 주말에만 보던 사이에서 이제는 평일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사이라니. 꿈만 같던 일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축구선수는 안돼

보통은 20주 넘어서 느낀다는 태동을 남들보다 빨리 임신 18주 차 무렵부터 느꼈던 나. 처음엔 뽀글뽀글 물방울 터지는 것처럼 약하게 느껴졌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태동이 보통이 아닐 거다."라고 예고를 하셨는데 그 예고는 현실이 되었다. 32주 차에 접어든 지금 태동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두세 번은 일정한 간격으로 딸꾹질하기도 하고, 축구공 차듯 옆구리를 퍽퍽 격하게 찰 때도 있고, 안에서 댄스 경연이라도 하는 듯 난리부르쓰를 펼칠 때가 많다. 뱃속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 태어나고 나서도 낮밤으로 이렇게 활발하면 어떡하나, 몸부림이 심하고 힘이 세면 어쩌나 걱정도 되는 중. 그래도 차밍아 축구선수는 안된다^^


안에서 도대체 뭐해...?


약간의 선행

어제 요가교실을 간다고 버스를 올라탔다. 함양에서 거창으로, 내려서 20분 동안 줄 서서 기다린 후 거창에서 다시 대구로 한차례 환승해 버스를 타고 와 몹시 피곤한 아침. 대구에 도착해서는 곧장 시내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40여분 정도 걸리는 버스 안에서 거의 반쯤 수면상태로 가고 있는데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바꿔줄 분 안계이소?"

고개를 들고 보니 5천 원 한 장을 달랑달랑하시며 승객들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계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할머니는 5천 원 밖에 없으신데, 기사님이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처하고 간절해진 상황. 지갑을 열어보니 마침 천 원짜리가 3장 있었다. 그래서 버스 앞으로 나갔다.

"기사님~ 현금으로 요금이 얼마예요? 제가 내드릴게요."

했더니 대답 없는 기사님. 잠시 생각하시더니 곧

"어르신 아까 동전 얼마 있다 했지요? 6백원 그것만 내세요."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말.

"아가씨가 마음이 참 예쁘네."

예상치 못한 칭찬에 머쓱해진 나는 천 원 세장을 가지고 다시 버스 뒷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근데 가만 생각하니 씩 미소 지어진다. 마음이 예쁘단 칭찬보다 '아가씨' 이 한 단어에 기분이 몹시 좋았다. 이렇게 배불뚝이 임산부한테 아가씨라고 해주시면 저는 행복합니다ㅋㅋㅋㅋㅋ



다리가 길어도 너무 긴 아기

4주 만에 병원에 정기검진을 갔다. 원래 28주 이후로는 2주마다 오라고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바우처 금액도 압박 아닌 압박을 줬고 그렇게 자주 갈 필요가 없는 것 같아 한 달 만에 갔다. 오랜만에 차밍이 만날 생각에 두근반 세근반. 잘 있는지는 태동을 통해 매일 자체 확인을 했지만 그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너무 궁금했다. 배 위에 젤을 바르고 나서 초음파 기계를 배에 갖다 대는 순간, "응?!!!! 이게 뭐야" 늘 차분하고 조용한 훈 원장님에게서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봐 걱정되어 놀라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보시더니, 선생님이 "35주.....?" 초음파 화면에서는 예정일이 2021년 12월 18일로 3주나 당겨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 이래.

"무슨 애가 다리가 길어도 이렇게 길지. 3주나 빠르네." 지난번에도 비슷한 말을 듣긴 했는데, 이번엔 무려 3주나 빠르단다. 그럼 다른 모든 신체도 발육이 빠른 건가. 예정일보다 빠른 12월생이 되려나 싶었는데 머리둘레와 복부둘레는 모두 1~2주 느려서 한마디로 머리는 작고 몸도 날씬하고 다리는 긴, 완성형(?) 몸매라고. 다행히 나랑 남편의 좋은 점만 닮은 것 같다. 키 큰 건 나, 하체가 긴 남편. 몸통 얇은 나, 머리 작은 남편. 평일이라 같이 병원에 못 온 남편에게 자랑을 했더니, 돈 굳혀준 효자라나 : ) 엄마는 다리가 길어서 태동도 심한 걸 거라며.



찌부되있는(?) 차밍이 얼굴
이렇게만 자라주어라



글을 써야 해


요즘 글을 쓰고 있다. 정확하게는 공모전에 제출할 에세이. <우리가 사랑한 지리산>이라는 주제로 국립공원공단에서 공모하는 사업이 있어서 한 번 써내 보기로 했다. 한동안 아이패드를 붙들고 살았네.  나와 남편 두 가지 버전으로 쓰고 이제 마무리만 앞두고 있는데 남편 버전을 남편에게 퇴고해달라고 맡겼다. 수정해 준 글을 최종적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날려버렸다. 아오 이번 주말까지 제출 마감인데 내일은 꼭 마무리 지어야지.


내사랑 방앗간에서 글 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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